0 개
4,739
26/07/2008. 14:23 코리아타임즈 (125.♡.179.126)
"일을 하지 않으면 몸이 편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플 때가 많았어. 그래서 지금도 일을 하고 있지"
젊은 사람도 혼자서 옮기기 힘든 커다란 철재 사다리를 작은 체구의 한 할아버지가 거뜬하게 어깨에 매고 공사현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인부가 "할아버지,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대뜸 "이 정도 쯤이야! 난 아직 30대라니까."고 너털웃음을 보인다.
이제 환갑을 훌쩍 뛰어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킴스 페인트 임병학(68세) 할아버지의 재밌는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곧 칠순을 앞둔 할아버지가 뉴질랜드에서 처음부터 페인트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는 10년 전에 나보다 먼저 뉴질랜드에 왔지. 할머니가 떠나고 한국에 혼자있다 보니 너무 보고 싶더라구. 그래서 나도 2년 후 뉴질랜드로 이민을 오게 되었어. 그런데 뉴질랜드에 살면서 매일 좋은 공기를 마시고 있음에도 한국에서 정년퇴직 후부터 너무 많이 쉬었는지 갑자기 몸이 아프기 시작해서 아무일이라도 해야 만 하겠다고 결심했어."
그러던 차에 우연히 토마토 농장을 경영하게 된 할아버지는 즐겁게 일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갑자기 찾아 온 수마(水魔)의 위력 앞에 망연자실하게 된다.
"겨울에 그렇게까지 엄청난 비바람이 불어 닥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며칠이 지나자 토마토는 차츰 썩어 들어갔고 또 일을 못하게 되자 몸도 마음도 서서히 아프기 시작했어."라며 이어
"그 때 주위에서 '한국에서도 전문 도장일을 했는데 왜 그 좋은 기술을 썩히느냐'고 하면서 페인트 일을 해 볼 것을 추천해주었어. 그래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했어. 거의 6년 전의 일이지."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아침 9시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늙은이라서 그런지 잠이 없나 봐, 항상 취침시간은 틀리지만 기상시간은 같으니까 말야. 그리고 일어나면 일하러 가는 시간만 기다려지니 내가 생각해도 문제인 것 같아(웃음)."
할아버지는 현재 집 내외부 및 지붕 전문도장공사를 하고 있는데 한때는 마누카우 시티에서 60미터 높이의 크레인에 올라가서 페인트 칠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나한테 10층 정도의 높이는 아무 것도 아니지. 남들은 높고 경사가 90°이면 많이 힘들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60-70의 경사를 만나면 고생을 해.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종일 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지. 그래도 짜증내지 않고 웃으며 일을 하니까 즐겁기만 해."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같이 사는 아들내외와 두 딸 그리고 사위들 이 "한국도 아니고 뉴질랜드와서까지 그렇게 고생하면서 무슨 일이냐"며 "이젠 좀 쉬세요."라고 말을 했지만 일을 하면서 평소 아팠던 할아버지가 점차 나아지고 얼굴에서도 웃음이 떠나지 않으니 지금은 아무 간섭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같이 살고 있는 아들내외가 뉴질랜드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함께 지내고 있지만 곧 그들이 뉴질랜드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되면 따로 살 거야"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또한 "자식들한테 절대로 누를 끼치고 싶지도 않고 서로 눈치도 보기도 싫어. 사랑하는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게 좋아."라고 덧붙였다. 인터뷰 내내 할아버지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자기가 아직도 30대인 줄 착각하고 있다니까. 아무리 일이 좋다지만 제발 조금만 욕심을 버렸으면 하는데…,"라며 걱정스러운 듯이 한마디 거들었다.
불과 몇 개월 전만해도 하루 9시간 일을 하던 할아 버지도 이제는 오후 4시정도면 몸에 피로가 와서 일찍 일을 마치고 있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할머니가 일하는 킴스클럽안의 옷수선 가게에 와서도 꼭 한가지 잊지 않는 것이 있다.
"나는 하루종일 움직이지만 할머니는 딱딱한 의자에 앉아 바느질 일을 하기 때문에 나보다 더 힘들어. 그래서 내가 시원한 안마를 꼭 해주어야 해. 그래야 할머니도 웃고 내 피로도 확 풀리니까.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