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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2008. 15:15 KoreaTimes (125.♡.179.126)
사람들은 처음 직장 이후 일생동안 캐리어를 평균 서너번 바꾸게 된다고 미국의 어느 교수가 말했다. 그 매번의 기로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또 다른 길을 찾는 데에 종종 결정적인 자기발견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가 싶다.
현재 매시 대학교 그래픽 디자인과의 졸업반이면서 미국의 화장품 회사인 Dermalogica 뉴질랜드에서 발탁되어 마케팅 디자이너로도 일하고 있는 박하나씨는 신세대의 자유함과 이웃집 여동생같은 친근함의 매력이 넘쳐났다. "일이 정말 정말 재미있어요(웃음)."하고 말하는 그녀를 보니 제대로 자신의 길을 잘 찾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박 씨는 중학교 2학년 때인 94년 크라이스트처치로 이민 온 후 그 곳에서 8년을 살았다. 그 때문인지 크라 이스트처치가 한국보다 더 고향같이 느껴진단다. 그 곳에 위치한 뉴질랜드의 명문 Burnside High School에서의 학창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박 씨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 진다.
Burnside High School은 미술, 음악, 무용, 체육 등 예체능계에 대한 투자가 남다른 학교로 유명한데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던 박 씨는 Form6 때까지 피아노를 전공할 생각만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Form7 올라 와 학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선생님 중의 한 명으로 전형 적인 영국 신사였던 디자이너 선생님의 수업을 재미있게 들으면서 처음으로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너무 늦은 것 아니었나요' 하고 말하려 하는 순간 그 마음을 읽은 듯 그녀가 쉼없이 말을 잇는다. "그런데 버서리에서 제 디자인 포트폴리오가 예상 밖에 전국 3등을 차지해버린 거에요. 자연스럽게 웰링턴 매시대학교 디자인과로 진학했지요."
하지만 1년 동안 웰링턴에 머물면서는 비바람이 어찌나 심하고 날씨가 우울한지 이 곳에서 더 이상은 도저히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공부도 재미있고 많은 것을 얻은 시간이 었지만 '아, 그리운 나의 포근한 고향땅', 크라이스트처치로 무작정 일단 후퇴(?)했다.
1년 동안 휴학하면서 그녀는 인생의 또 다른 경력을 만들었다. 크라이스트처치의 한인 방송국에서 기자, 디자 이너, DJ, 뉴스앵커, 방송작가까지 필요한 일들은 주어지는 대로 하며 만능재주꾼으로 활약한 것이다. 아침에는 차분한 목소리로 "뉴스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하다가 밤이 되면 음악방송에서 분위기 있게 목소리를 깔고 "오늘의 첫 음악, 띄워 드립니다~."하고 변신했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하며 즐겁게 보냈지만 대학 생활의 아쉬움과 패배감이 마음 한 구석을 차지했었다.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더라고요. 인생에서의 중요한 결정을 굳힐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 지금 생각하면 참 감사해요." 4년 전 오클랜드로 떠나와서 매시대학교에 다시 복학 했을 때도 여전히 크라이스트처치 향수병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클랜드의 모든 생활이 만족스럽고 즐겁다.
처음에 갑자기 오클랜드 캠퍼스에 나타난 박 씨가 성실하게 수업에 임하고 과제물마다 좋은 아이디어로 A학점을 받아내며 교수님들의 예쁨을 독차지하자 주변 키위 친구들의 시샘이 만만치 않았었다. 새침하게 와서 박 씨의 과제물을 보여달라고 와서는 자기 것은 절대 안 보여 주기도 하고 괜히 뒤에서 이름을 부르며 놀리는 등 상처 주기도 했지만 이제 졸업반까지 오며 정이 들었는지 박 씨에게 다가와 작품을 칭찬도 하며 인정해 준다고 한다.
박 씨는 회사업무와 학업 이외에 학교 스태프로도 일하며 필요한 디자인을 도맡아 하고 있어서 그야말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직장에서는 키위들이 너무 느리게 일해서 가끔 답답할 때도 있지만 공과 사를 구분하는 면은 그들에게서 배우기도 한다.
"항상 어디를 가든지 제가 더 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섬겨 주어야 높아지게 됨을 늘 배우고 있습니다."
인생이 나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정확히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특별히 마음 먹은 것은 없지만 기회가 되면 박사과정을 밟고 교단에도 서보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니, 그 전에 바쁜 생활을 잠시 접고 멜버른으로 여행 가는 것이 먼저라며 활짝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