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세상을 알아가는 교민이 있다. 본인은 ‘책에 미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앞날을 위해 우리 세대가 역사를 기록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불가능한 꿈을 꿈꾸고, 돈이 안 되더라도 해야 할 일을 꿈꾸고, 교민 사회에 문화가 살아 있는 풍토를 기대하는 작가, 《뉴질랜드를 만든 사람들》 저자 박성기 씨를 만났다.
《뉴질랜드를 만든 사람들》 감사한 마음으로 만들어
나는 한국계 뉴질랜드 사람이다. 이 점에 긍지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으며 뉴질랜드에 살면서 많은 혜택을 보았다. 세 아들도 건강하게 자라 다들 자기 구실은 하고 있다. 내가 뉴질랜드를 위해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서 《뉴질랜드를 만든 사람들》 책을 펴내게 되었다. 이 책은 사실 오래 전 교민 신문 <크리스천라이프>에 연재한 글을 모은 것이다. 몇 달 원고를 꼼꼼히 손봐 책으로 펴냈다. 뉴질랜드는 어느 날 갑자기 훌륭한 도깨비가 나타나 만든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피와 땀으로 건설한 것으로 너무나도 훌륭한 인물이 많이 있는데 한국 교민들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나아가 조만간 1.5세나 2세들 가운데 그런 멋진 역사적 인물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도 품었다. 그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2013년 재외동포문학상에서 대상 수상
그 무렵 동호회 형식의 문학회 모임이 있었다. 나는 주로 기사 형식의 글을 쓰고 있어 가장 가까운 수필 부문에 응모하게 되었다. 공모 마감 두 주를 앞두고 급하게 쓴 작품이다. 작품의 질보다는 내용이 좋아 운 좋게도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살 때 헌책방을 자주 다녔는데 그 중 세종문화회관 근처에 <공씨책방>이라는 곳이 있었다. 책방 주인의 성(姓)이 공 씨였다. <공씨책방>과 내가 만든 한솔문화원을 연계해 쓴 글이 심사위원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
학창 시절 인문학 책에 빠져
대학생 때부터 철학, 역사, 문학 등 인문학책을 많이 읽었다. 박경리 선생이 쓴 대하소설 《토지》를 읽고 문학 세계에 깊게 빠졌다. 1988년 기독교계 신문사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기획 기사나 미담 기사를 잘 쓴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스갯소리로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있다. ‘적는 사람 만이 살아 남는다’는 뜻이다. 스무 해 넘게 꾸준히 써 온 게 부족한 글 실력을 보완해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시인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시인이 되고 싶다. 내 아이디가 ‘시인과나’(poetandi)다. 아이디만 봐서는 내가 시를 쓰는 사람 같지만 나는 시를 못 쓴다. 실력이 안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직업(?)이 시인이다. 시인이 제대로 대접받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믿는다. 스마트 폰 대신 바바리 코트 주머니에 시집 한 권 꽂고 다니는 남자가 되고 싶다.
소설 문학 장르에 관심 많아
관심 있는 문학 장르는 소설이다. 고등학생 때 회사에 다니던 누나가 할부로 사들인 세계문학전집과 한국문학전집을 읽은 뒤, 소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이 내가 처음 읽은 소설이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평범한 사람들의 얘기를 다룬 소설을 좋아한다. 이문구의 《관촌수필》,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김소진의 《장석조네 사람들》 같은 책을 즐겨 읽었다. 대하소설로는 앞서 말한 박경리의 《토지》를 제일 감명 깊게 읽었고, 정동주의 《백정》, 고원정의 《빙벽》을 뜻깊게 읽었다. 다들 열 권 분량의 소설이다. 《백정》은 지금 구하기 힘든 책이지만 시인 겸 소설가의 글이라 그런지 문장이 너무 아름답다. ‘백정’의 애환을 담은 책인데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을 정도로 애정이 있는 소설이다.
《이중섭 평전》 가장 기억에 남아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시인 고은이 쓴 《이중섭 평전》이다. 소설 못지않게 평전을 좋아한다. 특히 예술가의 삶을 다룬 평전을 즐겨 읽는다. 아주 오래전에 읽어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예술가의 고독한 삶 속에서 내 모습을 투영해 볼 수 있었다. 또 한 권은 청록파 시인으로 잘 알려진 조지훈의 《지조론》이다. 대학교 3학년 초에 산 책인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삶의 가치관을 세웠다. 결코 변절자의 삶을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해 준 책이다. 마지막으로는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다. 고등학생 때 국어 선생님의 소개로 읽은 책인데 청소년 시절 백범을 만나 내 나름대로 큰 뜻을 품게 되었다.
교민들의 문화공간을 위해 한솔문화원 만들어
한솔문화원은 이민 오기 전부터 구상했다. 교민 사회에서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었다. 철학, 역사 같은 인문학 강좌도 하고 교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쉼터로 키우고 싶었다. 물론 기반은 도서관 형태였다. 오륙 년 정도 나름대로 한다고는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쉽게도 2000년대 초 문을 닫았다. 그러다가 3년 전 오클랜드에 책방이 하나도 없다시피 해 다시 도전해 문을 열었다. 오클랜드 글렌필드에 있는 제중한방병원에서 힘을 보태 주었고 지금은 뉴질랜드 정부에 비영리재단으로 등록되어 있어,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많은 분이 즐겨 찾아 주시면 고맙겠다.
작가가 추천하는 책, 《나무를 심은 사람》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을 교민들에게 추천한다. 세상(프랑스 프로방스) 사람들이 다 비웃었지만 주인공은 황무지에 날마다 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는 결국 숲이 되었고, 비웃었던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 주었다. 이 책은 150쪽 안팎의 분량으로 되어 있다.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어른, 청소년, 아이들 할 것 없이 누구나 한 번씩 읽었으면 좋겠다.
글을 열심히 쓰며 새로운 도전을 위해
내가 갖고 다니는 명함이 있는데 <글 노동자>라고 쓰여 있다. 글을 열심히 쓰겠다는 다짐이다. 내년 중반까지 오클랜드와 인근 마을을 인문 지리학 관점에서 다룬 책을 쓰려고 한다. 또한, 1.5세와 2세 가운데 제자리를 잡은 젊은이들을 한번 책으로 엮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교민 사회의 훌륭한 자원들이기 때문이다. 또 에베레스트 산을 처음으로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 경의 일대기를 계획하고 있다. 다른 꿈은 책방을 하나 내는 것이다. 2만 명이 넘게 산다는 오클랜드에 한국 책방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문화적 수치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힘을 모아 현실로 이뤄낼지는 앞으로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힘든 일, 무모한 일’에 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모두 노력
오래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악인 박영석 씨를 만난 적이 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고인이 되었지만 그분이 하신 말씀 중 이런 게 있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하라.” 인생은 도전의 역사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해야 한다. 가능한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케 하는 것, 얼마나 멋있을까? 남의 말에 흔들리지 말고 자기 소신껏 살며 꿈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그런 사람만 기억한다.
글, 사진, 영상촬영, 편집: 김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