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꿈을 직업으로 실현해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 사람들이 어린 학생시절 적성 검사나 장래 희망란에 자신이 꿈꿔왔던 직업대로 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꿈과 희망은 이상으로만 존재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교민이 있다. 보통 사람들처럼 현실에 맞추어 살았던 인생을 뉴질랜드 어학연수 1년의 계기로 다시 시작해 오스티오패틱, 초이스 클리닉에서 영국식 오스티오패틱 프랙티셔너,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철환 교민이 있다. 물론 의사가 되기 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실패와 도전의 연속으로 큰 결과물을 얻었다. 의사가 되기 까지 그가 걸어온 도전의 인생 길을 따라가 보았다.
뉴질랜드 어학연수, 인생의 터닝 포인트
한국에서의 생활은 보통 사람들처럼 주어진 틀에 맞추어 대학까지 공부하고 적성과 과거에 내 자신이 꿈 꾸던 희망과는 거리가 먼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었다. 매번 반복되는 생활을 탈출 하기 위해 선택했던 뉴질랜드의 1년의 어학연수는 아마도 꺼져가는 내 “적성” 혹은”장래 희망”의 기억에 다시 생기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1년간의 어학 연수 후 한국으로 돌아가 준비한 영어(IELTS) 시험점수를 가지고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하지만 부푼 꿈을 안고 재 입성한 뉴질랜드에서 첫 번째 시도는 어이 없이 실패를 했다. 당시 오타고 치대를 목표로 하여 컨디셔널 오퍼까지 받았으나 학과와의 커뮤니케이션 미비로 낙방 후 오클랜드 대학에서 약리학(pharmacology)으로 공부를 이어갔다. 공부를 마친 후 병원 연구실에 잠시 근무를 하였지만 본인이 의도하던 생각과는 맞지 않았다. 실험실의 연구 보다는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환경이 더 좋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여러가지 과정을 찾아보았다. 후에 오클랜드 대학 학생신분으로 돌아간 후, 수학 교육학을 마치고 사람들과의 커뮤니 케이션을 즐길 수 있는, 학생을 지도 하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다시 예전의 꿈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 한다는 마음과 각오로 백방으로 알아보던 중, 오스태오패시를 접하게 되었고 곧 공부로 이어갔다. 공부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공부는 그리 순탄하진 않았다. 늦은 나이와 유일한 아시안으로 공부 한다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처음 공부의 어려움은 주로 방대한 양의 공부에 있었다. 또한 유일한 아시안 학생으로서 아무 그룹에도 속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더욱이 학사 이후 석사로 들어갈 수 있는 정원이 약 20명 정도로 정해져 있어 모두들 경쟁자의 상태로 학업을 해서 인지 내가 함께 들어갈 틈은 더욱 더 힘들었다. 더욱이 영어공부를 늦게 시작한 나로서는 어려움은 한층 배가 되었다. “나는 영어를 못하는 외국인이다” 라는 사실을 받아 들였고 틀리는 표현이나 어려운 말들은 좀더 쉬운 방법으로, 말이 안되면 항시 그때 그때 물어 파악하는 습관을 들였다. “나는 외국인이다. 영어를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너희들이 못하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구사하고 또한 영어로 지금 공부를 하고 있다” 라는 생각들이 오히려 자신감과 오기로 학업에 열중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환자들과 대화로 하루 시작
현재 초이스클리닉(choice clinic) 에서 오스티오패틱 프랙티셔너 (혹은 영국식 오스티오패틱 의사)로 근무하고 있다. 초이스 클리닉에 환자가 방문하면 초진을 통하여 ACC가능 여부를 판단하고 ACC환자일 경우 ACC등록을 하고 환자의 증세가 오스테오패틱 치료가 불가한 심각한 상태일 경우는 GP (General Practitioner) 나 전문의 (Specialists) 혹은 기타 다른 전문가들에게 환자를 위탁 (referral) 하기도 한다. 만일 증세가 근골계 (근육, 뼈대와 관련된 조직 계통의 기관)에 국한 되고 또한 약, 수술 등이 필요한 심각한 단계가 아니라면 증세와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치료 방법과 계획을 세우는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다.
영국식 오스티오패틱 프랙티셔너, 오스티오패틱 의사란
오스티오패시는 크게 미국식과 영국식으로 구분 되는데 미국에서 이어져 내려온 American osteopathic practitioner 는 정형외과의로서 오스티오패틱 치료와 직접 정형 학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 전문의 이다. 영국 쪽에서 내려온 osteopathic practitioner는 수술과 약을 제외하고 좀더 오스치오패틱 치료방법에 중점을 둔 방식으로 이러한 치료 방법은 뉴질랜드를 비롯한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싱가폴 등으로 전파가 된 의학 이다. 현재 뉴질랜드 오스티오패틱 프랙티셔너들은 근골계의 질병에 대한 치료만을 위주로 하며, 기타 세분화 과정에 따라 소아 paediatric osteopathic practitioner, 성인 근골계 (musculoskeletal osteopathic practitioner) 그리고 두개(cranial) 의 환자를 본다.
오스티오패틱 프랙티셔너 (Osteopathic practitioner) 가 배우는 모든 지식은 근골(musculoskeletal system) 에 중점을 두며 인체 전체에 관한 해부학, 질병학 진단학 등은 환자의 상태가 전문가들에게 위탁 (referral)이 필요한지 아니면 오스티오패틱 치료가 안전한지를 결정하기 위해 배운다. 또한 이러한 학문들은 다른 장기들이 어떻게 근골계에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 이해를 돕기 위해 배우고 있다. 간단한 예로 대장의 질병이 어떻게 근육, 인대와 신경을 통하여 요통 골반통 등을 일으킬 수 있는지의 연관 관계를 생각하여 좀더 폭넓은 방법으로 근골계 질병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을 찾아 치료
오스티오패틱 프랙티셔너는 근골계 증상 자체를 치료하기 보기보다는 증상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을 찾아 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정신, 신체 마음 (body-mind-spirit)의 조화 (holistic model) 기반을 두며, 정신적인 측면, 인체, 마음이 어떻게 상호 연관 되어있는지에 대한 고찰을 통해 진료하며 이는 “질병, 진단, 질병 치료” 의 신체 와 정신은 별개라고 여기며 질병만을 치료하고자 하는 “biomedical model” 의 치료방법 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다. 예로 다리가 겹질려 치료를 받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 있는 기저 요소들, 즉 무릎, 골반, 허리 등의 근골 문제뿐만 아니라 그 동안에 받아오던 스트레스 등이 어떻게 불균형한 자세를 가지게 되는지 여러 가능성들을 찾아 재발 방지를 위해 폭넓게 치료한다. 또한 여러 가지 개개인에 맞는 치료방법, 운동 요법, 생활 개선에 대한 조언을 통하여 지속적인 치료효과가 유지되도록 노력한다.
계속되는 의학 공부 도전
현재 AUT 에서 PostGrad Health Science in Acupuncture를 공부 중에 있고 아마도 졸업하면 해부학과 생리학으로 질병을 이해하는 “양”과 몸 전체의 이해와 침을 주로 하는 “한” 의 두 개의 조금은 다른 철학들을 환자 진찰에 적용해 좀더 폭넓은 방법으로 환자에게 접근 하는 것이 계획이다. 또한 계속적으로 오타고에서 석사 통증학 졸업을 목표로 공부 중이기 때문에 석사 졸업 후에는 급성, 만성 통증 환자의 치료도 병행한 나만의 독특한 이해 방법으로 질병을 이해하고 환자를 치료 하고 싶다. 양학와 한학의 이해를 한몸에 실현하고자 노력하기 위해 학업을 계속 이어 가고 있다.
자신감을 가지고 이민생활을 하자!
자국과 멀리 떨어져있는 먼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 이다. 이럴 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감 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멋진 이름과 그럴듯한 영어 발음으로 아무리 감추려 해도 우리는 한국인 이다. 한국말을 할 줄 알고 또한 외국에서 살고 있으니 영어는 덤으로 혹은 어쩔 수 없이 해야 된다. 만약 언어 때문에 자신이 다른 나라사람들과 비교해서 위축이 든다면 먼저 “My English is better than your Korean” 라는 마음을 가져보자. 아마도 자신감이 생겨날 것이다.
글,사진; 김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