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기사를 하면서 7년 동안 일요일마다 자비를 털어서 노숙자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한인 교민이 있다. 4명의 자녀를 뒷바리지 하고 매주 음식을 준비해 노숙자들에게 7년 동안 쉬지 않고 나누어 주기 시작한 것이 알려지면서 각종 뉴스에 집중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당시 너무 힘들게 생활 했던 상황이라 혼자서 햄버거를 구입해서 노숙자들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과 약속을 했고 약속을 기다리는 그들의 눈동자가 떠올라 또다시 찾아갔다. 이런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7년전의 일 이지만 지금도 너무 선명하게 그들의 모습이 기억 난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노숙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교민이 있다. 남을 위해 봉사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오랫동안 쉬지 않고 봉사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7년전 우연히 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한 노숙자를 보면서 그들을 위해 봉사자로 나선 희망천사, 정신기 교민을 만나 보았다.
몇 년 전부터 각종 뉴질랜드 언론에 정신기 교민에 대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언론도 찾을 정도로 이제는 정신기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크라이스트처지에서 유명해졌다. 택시 기사를 하면서 7년 동안 일요일마다 공원에서 자비를 털어서 선행을 베푸는 것이 그 이유였다. 4명의 자녀를 뒷바리지 하고 매주 음식을 준비해 노숙자들에게 7년 동안 숴지 않고 나누어 주기 시작한 것이 알려지면서 각종 뉴스에 집중을 받았다. 그 동안 큰 상도 2번이나 받았다. 한번은 Local Hero in 2013로서 메달을 받았고 작년에는 크라이스트처치 사회에 노숙자를 위한 봉사가 알려 지면서 Queen Service Medal을 받았다.
사랑을 감동적인 방법으로 실천하는 자랑스러운 한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노숙자들을 위한 봉사를 시작 했냐고 질문을 한다. 봉사를 처음 시작 했을 때는 어떤 목적이나 계획을 만들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7년전 어느 추운 날 지금 봉사하고 있는 “latimer 스퀘어” 을 지나고 있었는데 우연히 경찰들이 폴리스라인 치는 것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노숙자로 보이는 사람이 거리에서 죽어 있었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추운 겨울 날 굶주림과 추위로 노숙자가 숨졌다고 하면서 불쌍하다고 한마디씩 하고 사라졌다. 잠시 멍하니 사건현장을 쳐다 보다 나 역시 발걸음을 돌렸다.
무거운 마음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일도 또 다른 노숙자가 추위와 배고픔에 죽음을 당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이 계속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결국 햄버거 몇 개를 사 들고 무작정 현장을 다시 찾아가 보았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의자에서 무작정 그들을 쳐다 보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어색하게 몇 마디 말을 건 냈다. 그리고 그들에게 햄버거를 나누어 주면서 다시 오겠다고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약속을 했다. 처음에 그들은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 다음주에 다시 그들에게 햄버거를 나누어 주었고 오히려 그들이 다음주에 또 올 수 있냐고 물었다. 개인적으로 당시 너무 힘들게 생활 했던 상황이라 혼자서 햄버거를 구입해서 그들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과 약속을 했고 약속을 기다리는 그들의 눈동자가 떠올라 또다시 찾아갔다. 이런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7년전의 일 이지만 지금도 너무 선명하게 그들의 모습이 기억 난다.
남을 위해 봉사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 부모님과 가족의 봉사활동을 통해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어머니와 형님은 지금도 나환자 촌에서 목회자로서 봉사하고 있다. 누님도 전에는 목회자 부인으로서 나환자 촌에서 봉사를 했었다. 가족들의 이런 봉사 활동이 아마도 나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틀림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봉사는 금전적인것 보다는 마음으로
지금의 봉사단체는 비영리로서 이름은 Blessing Bread For Homeless이며 처음 햄버거 몇 개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많은 부분이 기부로 채워져서 재정상으로는 큰 문제는 없다. 처음에는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절망도 했고 오해도 받으며 어려웠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헌신하고 있다. 하지만 봉사는 금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 단체를 잘 이끌어 가기 위해 노력 하고 있다.
변화된 모습에 큰 희망 얻어
노숙자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때로는 힘든 상황도 많았지만 보람된 순간도 많았다.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절망적이고 무질서한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정상적으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큰 희망을 얻는다. 또한 이제는 그들이 봉사하는 사람들을 신뢰하며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가장 행복하고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도 종종 거리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도 외롭고 쓸쓸하고 가슴이 아프다.
함께 공존 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자
일반교민들이 봉사에 참여하려면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 한 것 같다. 노숙자들에게도 찾아가고 교도소에도 가고 지역봉사를 위해 할 일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나 또한 노숙자봉사 이전에 교회에서 청년들에게 봉사했고 키위교회 사람들과 같이 교도소에 가서 몇 년 동안 봉사했다. 이민자들은 이방인들이 아니다. 이민자로서 이 사회에서 인정받고 존경 받고 싶다면 사회봉사에 뛰어들어보자. 키위들도 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이민자들을 존경한다고 생각한다. 키위들과 함께 이사회에서 같이 생존 하며 살아가야 할 이웃으로 함께 공존 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보자!
뉴질랜드 전역에 봉사활동이 넘쳐나길 기원
최근에 시티 카운슬을 방문하여 노숙자들을 위해 16베드를 더 제공 받았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추운 겨울날 노숙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내가 처음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봉사를 시작 했을 때,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는 거의 없었다. 7년동안 쉬지 않고 봉사했던 노력이 지금은 각종 단체에서 매일 있으며 하루에 몇 번 있는 날도 있다. 키위교회들도 지금은 노숙자들 위한 봉사에 많은 단체들과 함께 동참하고 있다. 소망이 있다면 다른 도시에도 많은 급식소들이 세워져서 배고픔이 없어지는 뉴질랜드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더 많은 합숙소가 세워져서 노숙자들의 주거환경이 개선되어 지기를 기원한다.
당당하게 존경 받으며 이민생활을 하자
이민자로서 외국에서 살아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 이민자들도 이 땅에서 존경 받으며 현지인으로서당당하게 살아가자. 오랫동안 교도소에서 봉사했던 한국인 모녀를 보았다. 학교에서 성실하게 봉사하는 선생님, 그리고 교회에서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는 많은 교민들을 보았다. 봉사는 귀한 것이고 훌륭한 것 이다. 어려운 것 이 아니라 보람된 것 이다. 이러한 우리의 봉사 활동이 뉴질랜드 지역사회에서 우리 이민자들의 가치 또한 높이는 일이라 생각한다. 어느 사회나 봉사로 흘린 땀은 귀하고 값진 것이다.
매주 오전 11시 30분 , 크라이스트처치 시내 Latimer square에서 배식을 한다. 크라이스트처치 교민들은 물론이고 오클랜드에서 크라이스트처치로 여행 온다면 꼭 들려 봉사에 동참해주길 바란다. 우리모두 각자의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에 참여 해보자.
취재 후원: 한국 언론 진흥재단
글,사진: 김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