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꿈을 가지고 뉴질랜드로 왔지만 무심코 작은 법률을 위반하여 뉴질랜드에서 쫓겨나거나 가지고 있던 재산을 전부 빼앗길 위기에 처한 분들을 자주 본다. 이런 분들은 이미 각종 상담 비용으로 대부분의 돈을 지출하고 모든 수 를 다 사용하신 후 최후의 보루로 찾아오시는 분들이다. 법정변호사로 일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이런 벼랑 끝에 있는 분들을 구제하는 일이다.
에이전트와 변호사 항소 비용으로 많을 돈을 지출하였지만 결국 이민성으로부터 비자 기각 통보를 받은 의뢰인이었다. 자신보다 아이 걱정을 하는 의뢰인의 그 눈동자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의뢰인이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법률을 위반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영어를 잘 못하시기에 에이전트의 잘못된 조언을 전적으로 의지한 것이 문제였다. 며칠에 걸친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민성에 밝히지 않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사실들을 알아냈고 이를 근거로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비자가 나온 날 울음을 터뜨리며 감사하는 의뢰인을 보면서 이런 분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했다.
학생 시절 다양한 봉사 활동
1995년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 뉴질랜드로 이민 왔다. 중, 고등학교 때 공부를 특출 나게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으나 다양한 활동을 열심히 했다. 5년동안 축구부에서 활동하였고 오케스트라에서 플룻을 불었으며 Amnesty International, 도서관 사서일 등 여러 봉사 활동을 하였다. 어렸을 때 변호사가 주인공인 서적과 영화를 많이 접해서 그런지 중학교 때부터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오클랜드 대학 법대에 들어갔고 어렸을 때부터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복수전공 과목으로 철학을 선택했다. 대학생활 중에는 학생들의 각종 고충을 상담해주는 student advocate, 신입생들이 대학에 정착할 수 있게 도와주는 Uniguide, 4년간 한인 법대 신입생들을 위한 튜토리얼 운영 등 다양한 봉사활동과 특별활동을 했다. 특히 법대생들이 모여서 하는 시사풍자극(revue)에 참여한것과 2008년 태국에서 개최된 세계 토론대회에 심판관으로 참여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대학 밖에서는 각종 사고나 범죄 피해자들을 상담해주고 위로해주는 피해자 지원 센터(Victim Support Centre) 봉사를 하고 1.5세, 2세 학생들을 위한 단체인 Kowiana의 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수요일 밤과 토요일을 이용하여 AUT 대학에서 2년간 코스를 마치고 동시통역 자격증도 땄다. 이 같은 다양한 봉사활동과 특별활동 경험은 졸업 후 직장을 구할 때와 직장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Princes Court Chambers, 법정변호사로 근무
근무하고 있는 곳은 Princes Court Chambers이며 규모는 작지만 경험과 연륜이 많은 Robert Hesketh 법정변호사와 Marshall Bird 이민변호사와 함께 일하고 있다. Robert Hesketh 법정 변호사는 민사 및 형사 소송분야에서 20년 이상 잔뼈가 굵은 변호사로 뉴질랜드 인권위원회 인권소송국장(Director of the Office of Human Rights Proceedings)을 10년간 역임한 인권법의 전문가이다. 미국 변호사이기도 한 Marshall Bird 이민변호사는 미국에서 아놀드 슈왈 제너거, 스타워즈 배우들의 비자 문제를 해결한 바 있으며, 30년 이상 수많은 베트남, 중국 조선족, 러시아, 독립국가연합(CIS)지역,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과 이민자들의 억울한 사정을 듣고 법정에서 변호를 해주며 뉴질랜드 정착을 도왔다. 이분들을 도와 의뢰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일하고 있으며 매일매일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Chamber 변호사님들은 아무리 쉬워 보여도 편법을 사용해서는 안되며 항상 정도의 길을 가라고 가르친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그걸로 아무리 그럴듯한 주장을 해도 결국은 무너지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정도를 걸어서 쌓인 신뢰는 Chamber의 큰 자산이다.
법정변호사와 사무변호사의 차이
법정변호사(Barrister)는 법원에서 변론을 주로 하는 변호사를 말한다. 법정변호사 또한 사무변호사(Solicitor)처럼 법률자문을 주는 일도 하지만, 법정변호사는 법원에 직접 출두하여 변론을 주로 하는 반면에, 사무변호사는 법률 자문이나 사무를 주로 하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법정변호사는 부동산 매매를 할 수 없으며 로펌이 아닌 Chamber를 구성하여 활동한다. 법정변호사는 소송의 전문가 이기에 일반적으로 사무변호사들은 의뢰인이 복잡한 소송절차를 수행할 필요가 있을 경우 법정 변론을 법정변호사에게 맡기곤 한다.
주뉴질랜드 대한민국, 대사관 근무
대학을 졸업하고 법정 변호사 또는 검사가 될 계획이었으나 우연히 주뉴질랜드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전문직 행정원을 채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지원하게 되었다. 국제법에 관심이 많던 나에게 대사관에서 일한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었다.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키위 직원이 키위 변호사를 고용해서 부당해고로 대사관을 고용법원에 고소한 것을 조목조목 반박하여 고소를 취하하게 한 것과 뉴질랜드 제도와 법이 생소한 한국 사람들에게 각종 절차와 법적인 해결 방안들은 설명하여 문제를 해결하는걸 도와준 것 그리고 대사관에서 주최한 법률 및 회계 세미나에서 뉴질랜드 주요산업과 투자관련 법에 대해 강의한 것이다. 대사관에서는 외교관님들이 항상 대사관에 만족하지 말고 꿈을 크게 가지라고 조언해 주셨으며 이는 3년 3개월간 근무했던 정든 대사관을 나와 법정변호사가 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여러가지 힘든 일들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참 값진 경험이었다.
법정변호사를 꿈꾸는 후배를 위해
법정변호사는 문제의 예방보다는 문제가 발생한 사람들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줘야 하는 전문직이다. 미국 영화에서 멋지고 화려하게 나오는 직업이지만 실제 법정변호사와는 큰 차이가 있다. 자신이 하는 말 한마디가 의뢰인의 삶 전체를 바꿔놓을 수 있기에 그만큼 스트레스도 큰 직업이다.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이 있기에 남의 짐을 자신의 짐처럼 여기고 짐을 덜어주는 것에 마음이 있는 분들에겐 최적의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뉴질랜드는 한국과 달리 대학교 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성적만 받으면 고등학교 성적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중고등학교때 공부를 못해도 포기하지 말았으면 한다. 다만 특별활동이든 봉사활동이든 아무거나 좋으니 학생시절만 할 수 있는 경험을 마음껏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못하고 자신 없는 일도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다 보면 자신감이 붙고 잘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대학 토론부 활동 경험은 법정변호사로 일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영어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겁나서 고등학교때 토론부 활동을 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또한 꼭 변호사가 되려고 법대를 갈 필요는 없다. 웰링턴에서 일하면서 깨달은 점 중 하나는 수많은 젊은 한인 법대 졸업생들이 뉴질랜드 법무부, IRD, 내무부, 외교부, 비즈니스혁신고용부, Pharmac 등 정부요처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이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 법률 전문가로 교민들을 위해 봉사
한인 커뮤니티가 뉴질랜드 주류사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직장을 가지고 있는 1.5세들이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일환으로 웰링턴 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1년간 한인 직장인들의 네트워크인 Kimchi Club 웰링턴 지부의 코디네이터 일을 맡았으며 오클랜드 Kimchi Club에서도 한인 직장인들이 뉴질랜드와 교민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과 끈기, 포기하지 않는 열정을 잘 활용하면 뉴질랜드 사회의 귀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Robert 변호사님과 Marshall 변호사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그분들의 말씀과 행동을 하나하나 배워 법률 전문가가 돼서 교민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교민사회가 풍족해 지는데 일조하였으면 한다.
글,사진 : 김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