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21세기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느림의 미학을 가지고 있다. 성격이 아무리 급한 사람도 붓글씨를 쓰다 보면 차분해 진다. 붓글씨뿐만 아니라 서예의 모든 준비 과정 또한 느림에 미학을 가지고 있다. 먹을 빠르게 갈면 입자가 굵어진다.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갈다 보면 어느새 모든 것이 차분해 지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서예는 첨단의 시대에 오히려 품위와 멋을 내 뿜는 동양의 전통예술이며 뉴질랜드라는 서양문화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분야이다. 아무리 기계가 발전해도 사람의 손 맛이 필요한 것이 인간이다. 느림에 미학 “연향회” 서예 지도 유승재씨를 만나 보았다.
평소 동양 문물에 흥미도 있었고 또 교양으로 서예를 익혀 두라는 주위의 권고도 있어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마침 서예를 배울 수 있는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도 가까이 있어서 서예를 배우게 되었다. 교실의 분위기는 먹의 향기가 정신을 가다듬게 하며 먹을 가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 더욱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내고는 했다. 선생님들은 질문 드리기도 어려운 분들이라 어쩌다 한 두 번 글씨를 바로 잡아 주시는 것으로 감사하게 여기며 주로 법첩을 중심으로 익혀나갔다. 각 체 별로 처음 기초가 되는 몇 자 말고는 보고 쓰라고 써 주는 체본(體本)은 거의 없었다. 서예는 동양 고유의 문화이므로 서양인들과 이런 저런 경우로 만나면 더 없이 좋은 예술과 역사를 아우르는 화두가 된다. 간혹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유럽의 인사들을 만나면 금새 가까워질 수 있고 친분을 오래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 적도 있다. 중국인들과는 서예 대가의 서풍(書風)을 놓고 두어 마디 나누면 차 잔을 채우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눌 수 있다. 중국이나 대만 등을 다니며 서화 작품을 두루 돌아보는 안목도 서예에서 얻은 것이라고 하겠다. 잘 알려진 유명한 박물관 전시실에서는 실로 뛰어난 전시품을 보며 감탄을 하고는 한다. 한국의 TV 사극 화면 뒤에 둘려있는 병풍이나 벽에 걸려있는 서예 작품에도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서예 한인 동호회 “연향회”
노스쇼어, 그랜필드에 있는 한우리교회에서는 교민과 지역사회를 위해 문화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서예 예술에 관심이 있는 교민의 뜻이 모여 2006년 10월에 연향회 모임을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연향회 서예 동호회 모임은 명필대가의 법첩(法帖) 중심의 정통 서예를 연구하고 익히어 개성과 창의적 서예를 즐길 수 있도록 하며, 서예를 통해 타 문화권과 교류를 확대하며, 교민 정신생활에 건실함과 즐거움이 되도록 노력하고, 품위 있는 동양의 붓의 문화를 뉴질랜드에 알리며 또한 우리 청소년들에게 우리문화를 이어 가도록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부드러운 붓이 검은 먹을 듬뿍 머금고 흰 화선지 위를 때로는 가늘게 때로는 굵게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멎는 듯 미끄러지며 빚어내는 글씨는 고요함 가운데에 우리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이런 매력을 함께 나누는 가운데 우리 붓의 문화는 이곳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고 생각 한다. 이렇게 서예를 익히며 서로 즐기는 마음들이 한 벼루에 모였다는 뜻으로 연향회(硯鄕會) 곧 벼루를 고향으로 삼고 있다는 뜻으로 부르고 있다.
제8회 설맞이 연향회 서예 전시회 성료
지난 1월21일 Mairangi Arts Centre에서 일주일 동안 연향회 전시회가 열렸다. 여덟 번째의 회원전으로 소장품을 포함, 모두 오십여 점의 귀한 작품이 전시되었다. 우선 한자(漢字)로는, 상형문자의 모양을 아직 지닌 전서(篆書)체를 비롯, 각 체가 있고 한글로는 고체(古體)인 판본체(板本體)를 비롯해 각체가 소개되었다. 그리고 서예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전각(篆刻)과 문인화(文人畵)작품 그리고 와당(瓦當) 몇 점도 전시 되어 많은 사람들에 눈길을 끌었다. 잘 알고 있는 대로 짐승의 털을 모아 붓을 매어 글씨를 쓰기 이전에 고대 중국에서는 이미 금속으로 글씨를 새기어 기록하였다. 거북의 배나 등 껍질(갑, 甲) 또는 소 같은 짐승의 뼈(골, 骨)에 글자를 새겼던 시대부터 따지면 약 4천여 년을 헤아리는 세월을 통해 한자의 글씨 모양이 변해 온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양 그대로 그림 그리듯 쓰는(상형, 象形) 갑골(甲骨)문자를 벗어난 전서(篆書)체, 이를 좀 간단하게 다듬은 예서(隸書)체, 쓰기에 편하고 통일된 모양을 가져 모두가 쓸 수 있게 다듬어진 해서(楷書)체 그리고 점과 획과 각진 곳이 많아 일상 생활에 쓰기에 불편한 해서체를 좀 더 쓰기에 편리하게 개선한 행서(行書)체와 초서(草書)체… 등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한글로는, 세종대왕시대의 훈민정음원본, 용비어천가 그리고 월인천강지곡 등을 인쇄하기 위해 나무 판에 새긴 글씨체인 판본체를 비롯, 바르게 쓴 정자(正字)체와 흘림체 등, 560여 년을 거쳐 변천해 온 아름다운 우리글이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약 4천 년을 헤아리는 고대부터 내려온 한자와 560여 년 동안 쓰여 온 우리글 한글,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서예를 통해 만날 수 있고 그 고전(古典)적 이름다움에 빠질 수 있음은 실로 놀라운 일이라고 하겠다. 전시된 작품들은 우리 시와 한시(漢詩) 그리고 성경 구절 등, 회원 각자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새겼으며 제갈공명의 출사표를 쓴 두 폭 가리게, 천자문(千字文) 그리고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문(부분)등이 눈길을 끌었다. 현지인들을 포함해 약 220여명이 관람을 해 작년보다 좋은 반응을 보였으며 격려의 말씀도 많이 남겨 고맙게 여기고 있다. 이런 뜻에서 이번의 전시회는 좋은 시도였으며 그래서 우리 청소년들이 부모님들과 함께 많이 관람하기를 기대했었다.
교민들이 서예를 배우고 싶다면
처음 붓을 잡는다고 겸손의 말씀을 하지만 우리 교민들은 학생시절에 이런 저런 이유로 붓을 잡아본 경험이 다 있어 시작에는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 한다. 서예는 급한 완성보다는 조금씩 오래 걸어 멀리 간다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리 서예교실은 한 학기에 여덟 번 교실이 열리며 네 학기(32회)를 마치면 일단 붓 잡는 기초부터 각체의 기본은 익힐 수 있다. 그러나 서예는 워낙 범위가 넓기 때문에 학기 관련하지 않고 본인의 취향과 관심과 진도에 따라 사실상 평생을 즐길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배웠으면 하는 마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오클랜드에는 서예를 익힐 수 있는 곳이 몇 곳 또 있으니 편리한 대로 선택하시기 바란다.
무엇보다도 기본 네 가지 도구, 종이-붓-먹-벼루는 물론 그밖에 책과 전각도구 등을 한국에서 가지고 와야 함이 가장 큰 불편이라고 하겠다. 서예는 또한 보는 예술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작품을 많이 봐야 하는데 뉴질랜드에서 서예 전시회를 볼 기회가 부족함이 모든 회원들이 아쉬움을 많이 느끼고 있다. 연향회 회원이 기회가 되는대로 오클랜드에 있는 중국 서예가들과 함께 교류를 하고 있는 이유이다.
우리의 고문(古文)과 한문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매우 큰 도움이 되니 이 점 참고하면 된다. 서예에는 도움이 되는 참고서가 몇 가지 있지만 이곳에서의 불편한 점은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제약된 환경에서도 꾸준히 연구하는 자세로 서예를 익혀 작품을 내왔던 회원들, 특히 작품을 처음 출품한 회원에게 찬사를 보낸다. 서예는 글씨를 쓰는 실용의 유익 말고도 동양 예술로서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만 하다. 우리 한인사회의 각급 단체를 중심으로 서예를 통해 우리 스스로 정체성을 즐기며 나타내는 ‘한인 문화 패턴’을 세워 나갔으면 한다.
뉴질랜드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교민들에게
사람에게 자기 얼굴이 있는 것처럼 한 민족도 그 얼굴이 있다. 누구나 자기자신을 잘 보이기 위해 치장을 한다. 우리 한국인들은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 얼굴을 바꿀 순 없다. 영어만 잘 하고 외국인 친구만 사귄다고 해서 우리 얼굴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 한다. 우리는 이 얼굴을 잘 그리고 제대로 가꾸어야 한다. 우리 말을 하고 우리 역사의 줄기를 놓지 말고 우리 문화를 익히며 이어가도록 하여 우리 얼굴을 제대로 지켜가야 한다. 경쟁은 다른 사람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곧 나 자신과 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과는 협력하는 것을 배우기 바란다. 우리는 세계를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내 얼굴 모습을 잘 가꾸고 내 힘을 키워 다른 사람과 도움을 나누며 자랑스러운 한국인과 동양인으로 세계를 살아가기를 바란다.
글,사진 ; 김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