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서체를 형상화한 현대미술 작품들을 발표해온 교민 양규준씨(전, 양규준 미술아카데미원장)가 서울에서 제작한 작품으로 초대전을 하고 있다. 뉴질랜드 leading 갤러리 중 하나인 Whitespace 갤러리(12 Crummer Rd, Ponsonby)에서 지난8월 21일부터 9월 8일까지 열린다. 올해 3월 잠시 귀국한 그는 서울에서 중앙대학교 미술학부 서양화과와 선화예술고등학교에서 2년 계약으로 초청강의를 하고 있으며, 서울화단에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대미술작가 양규준씨는 15년 동안 오클랜드에서 거주하며, 양규준 미술아카데미를 통해 교민사회에 미술교육가로도 알려져 왔다.
이번 전시회는 갤러리 작가들의 연례적인 초대전 이다. 전속작가로서 일년에 한번 전시회를 가져야 한다. 본래 지난 5월에 예정되어 있었으나 잠시 서울로 귀국하는 상황에 작품제작 차질을 감안해 전시규모가 약간 축소되어 76x76cm 크기의 비교적 크지 않은 작품 위주로 전시회를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 제작한 작품을 뉴질랜드에서 전시회를 갖는 경우 문제되는 것이 작품운송 문제가 있다. 캔버스의 틀을 일반적인 무게보다 가볍게 제작을 의뢰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난 해 2m가 넘는 대작들을 통해 단색조의 절제된 색채로 음과 양의 조화, 합일을 주제로 작품을 발표해 왔다. 또한 오클랜드 대학원, Whitecliffe 미술대학원 석사 과정때부터 한국의 전통성과 서구 현대미술의 접목을 시도해 왔다. 이번 출품작들은 76 X 76cm 크기의 비교적 작은 그림들 Red, Blue, Green등의 강한 원색의 배경위에 다이나믹한 제스쳐의 흘리기 기법과 서예적 형상이 어우러져 있다. 작년 작품들에 비해 ‘기’의 표현이 강렬하고 서양의 기하학적 미술언어의 접목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는다고 한다. 이번 작품들을 통해 주로 고국에서의 감동들과 뉴질랜드 여름, 흐드러지게 핀 포후투카와(Pohutukawa)나무의 붉은꽃에 대한 자신의 추억을 화폭에 담아보려고 했다.
작가는 어떤 사물이나 세계를 보는 두 가지 관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변화하는 사물에 대한 사유적 의문을 통해 실체에 접근하고자 하는 호기심 이다. 예컨대 나무가 봄에 새싹이 나고, 여름에 잎이 무성해 지듯이 가을에는 단풍이 들어 잎은 시들고, 결국 겨울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 있다. 어린 새싹이 자라서 어른 나무가 되고, 고목이 돼 쓰러져 흙으로 돌아 간다. 그러면 과연 흙이 나무인가? 나무가 흙인가?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나무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 인가? 동양에서 ‘기’란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주도하는 어떤 원천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이러한 ‘기’의 흐름을 음미하면서 현상을 보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동양사상과 물리학의 만남이라는 인식론인데, 나는 이것들에 많은 관심이 있다. 예컨대 내 그림에 나오는 기상예보 싸인들, 적외선 사진처럼 보이는 기하학적 요소들이 그것들 이다. 내 그림에 있는 커다란 형상의 서예적 요소 안에는 세파를 견디며 꿋꿋하게 생장하는 어떤 자연물이나, 영웅적인 인간의 질곡 된 삶이 반영돼 있다. 딱딱함과 부드러움, 작은 것과 큰 것, 습함과 마름, 서양과 동양, 이성과 감성, 있음과 없음 등 서로 다른 요소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기를 원한다. 나아가서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에 대한 존재가치가 부여되는 그런 세계를 제 작품을 통해서 꿈 꾼다.
서울에서의 미술작가 활동
나는 작가이자 미술교육자로서 현재 중앙대학교 미술학부 서양화과와 선화 예술고등학교에서 2년 계약으로 초청강의를 하고 있다. 예술 고등학교에서도 점차 입시제도가 변화해 감에 따라 획일적인 입시 미술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교육 과정을 도입한다는 측면에서 내가 영입됐기 때문에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뉴질랜드에서 공부한 칼리지, 대학의 교육과정 연구가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미술대학 3학년 과정에서도 획일적인 입시제도로 다져진 학생들의 두뇌에 창의적 순발력을 불어넣기 위해, 뉴질랜드 대학의 교육 시스템을 활용하면서 좋은 효과를 보고 있다.
관념에 습성을 벗기 위해 노력
지난 2002년 서울 인사동에서 다섯 번째 개인전을 마치고 뉴질랜드로 돌아와 한동안 작품이 이어지지 않았다. 작품에 세상이 눈에 들어왔는가 싶었는데, 다시 안개가 밀려와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강도 높은 교육으로 유명한 Whitecliffe 미술대학원에서 실기, 이론과정까지 도전하기로 했다. 학교에서 키위 작가들과의 지적 자존심 대결국면에서 내 자신이 오기로 똘똘 뭉쳐있었던 시기 였다. 매번 연구과제가 이어지면서 일주일에 하루도 편히 쉬지 못했다. 안 하면 그만 이었지만 학문적 열기가 충천한 곳에서 자존심이 깨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군대 신병훈련소 이래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나 역시 1년 차 마지막 스튜디오 발표 시간에, 영국에서 온 초빙교수가 나에 의도와는 다른 관점에서 질문을 압박해 오는 바람에 엄청나게 깨져서 어떻게 교실을 나왔는지, 밝은 햇살이 수치심으로 온 몸에 꼬치면서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버브리지 아래 선착장에서 하염없이 그 사건을 곱씹어 생각했었다. 뜨거운 액체가 볼을 타고 흘렀다. 30여 년 동안 감싸 안아온 나의 예술 세계에 대한 최후의 날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수십 년 동안 오랜 타성에 젖어 어찌하지 못했던 한 올 한 올 내자신 안에 있던 관념의 습성이 벗겨지기 시작했고, 내 작품은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한국은 대단히 역동적인 나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적으로 아직도 획일적인 입시제도로 청소년의 창의적 분출구를 가로막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수 십 년 동안 입시제도 때문에 미술과목이 학교교육에서 소외돼, 지금의 30~40대 중년층의 미적 안목에 쇠퇴를 가져왔다고 진단 받고 있다. 이것은 곧 미술시장에서 콜렉터 (수집가)층의 빈곤으로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 교육의 정상화는 사회의 장래를 결정짓는 무척 중요한 요소로 보인다.
뉴질랜드의 칼리지, 미술대학의 교육프로그램은 유럽이나 미국과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선진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단지 학생입장에서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것이 문제라고 생각 한다. 예컨대 한국학생이나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입시교육으로 치닫는 한국의 교육현실을 극복하고자 뉴질랜드로 온 것인데, 역으로 한국의 입시미술학원 스타일의 -획일적인 사고체계에 의한 묘사위주의- 그림을 선호하는 아이러니가 있다는 것이다. 사물을 보는 사고능력, 조형성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 한다.
미술계에서 한국작가들의 열정은 어느 분야보다 더 한 듯싶다. 서울에 600여 개가 넘는 갤러리에서 전시회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나도 벌써 여러 차례의 그룹전을 통해 오랫동안 뜸했던 서울화단에 진출하고 있다. 인사동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은지 10년 만 이다. 오히려 많이 서구화 되어 보이는 나의 작품을 서울화단에 옮겨 심는다는 것이 자신감도 있지만 꽤 조심스럽다. 다음주에 서울로 돌아가면 내년 중반쯤 서울에서 있을 대작 위주의 개인전 준비로 바빠질 것 같다. 10여 년만의 귀국전으로 개대와 우려를 작품 곳곳에 표출하고 싶다.
글,사진: 김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