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활동 하고 있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교민 이미연씨가 오는 11월 29일 오클랜드 타운 홀에서 제 1회 Gift of Music 이라는 Charity Concert가 열린다. 오클랜드를 시작으로 웰링턴 등 해마다 뉴질랜드 도시를 번갈아 가며 정기적으로 연주 할 계획이다. 연주회를 통해서 나오는 모든 수익금은 불우한 이웃 특히 아동들에게 기부 될 예정이다.
그 동안 나 자신의 꿈과 목표를 위해 긴 시간을 오로지 앞만 보며 갖은 노력과 시련을 겪으며 달려온 결과 명실공히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은 이루었지만, 지난 10년간 뉴질랜드를 떠나 세계각국 연주회를 다니며 어느덧 30살 이라는 나이를 접하고 보니 지난날의 꿈을 이제 현실로 옮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느꼈다. 1995년 이민 온 후 뉴질랜드는 제2의 조국이며 나에게는 여러 가지로 너무나 큰 도움을 준 뉴질랜드에서 그 꿈을 실현하게 될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고, 뉴질랜드에서부터 시작 하여 점차 더 넓은 세계로 이 콘서트를 준비 할 계획 이다.또한 연주회를 통해서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클라식이라는 음악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싶은 연주자의 작은 바램 이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교민 이미연
피아니스트 이미연씨는 만 12세의 나이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우며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을 왔으며 그 후 제 2의 조국이 된 뉴질랜드에서 본격적으로 피아노 공부를 하였고 국내 최고의 규모를 가진 전국대회 5개에서 1등을 휩쓸었으며, 15세에는 영국 왕립음악원이 주최하는 최상의 실기시험에 성악을 포함한 전 악기부문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1위를 차지하면서 연주 초청과 장학금을 받았다. 1998년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16세에는 뉴질랜드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수도의 웰링턴에 위치한 Victoria University (빅토리아 대학)에 2년 월반으로 정식 입학하였다. 대학입학 후 뉴질랜드 국내뉴스, 신문, 잡지, 라디오, 방송 출연등 더욱 활발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였으며 Auckland Philharmonic 과 함께 당시 최대 규모의 페스티벌 ‘Starlight Symphony’ 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연주로 약 20만 명의 관중 앞에 섰다. 그 외 뉴질랜드 총독관저에 초청되어 뉴질랜드 수상, 총리, 전 대한민국 한승주 외교부 장관및 세계각국의 대사, 독주 연주회를 가졌으며, 시사 Magazine ‘New Zealand Listeners’ 와 한국의 ‘객석’ 등에 피쳐링 되었다.
19세가 되던 해에는 Auckland University 피아노 학사과정을, 이듬해에는 석사 Honours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며 ‘Blue Award’ 의 명예를 안았고, 미국 Johns Hopkins (존스홉킨스) 대학의 음대 Peabody Conservatory (피바디 콘서바토리) 석사과정 실기시험 만점으로 최대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며 더 큰 꿈을 위해 뉴질랜드를 떠났다. 나이 21살 석사과정 시작 6개월 만에 콘서바토리에서 개최하는 Harrison Winter 대회를 1등하며 Peabody Symphony Orchestra 와 협연을 하였고, 2006년에는 스페인 소피아 여왕의 후원으로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제 52회 Maria Canals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에서 이미연양의 첫 세계대회 출전에 3위 입상과 함께 Rolex Special Prize 를 받으며 대회 역사상 뉴질랜드 최초로 3위권에 드는 영광도 안았다.
피바디 콘서바토리에서 석사과정과 Graduate Performance Diploma 과정을 학과목 포함한 GPA 4.0점 만점에 3.95 의 점수로 졸업한 뒤 2007년 10월에는 한 해에 전문 피아니스트 3명 미만을 뽑아 세계적인 거장들에게 지도 받게 되는 이탈리아의 ‘Incontri col Maestro’ International Piano Academy of Imola 특수 아카데미에 뽑히는 명예도 얻었다. 그곳에서 마에스트로 Boris Petrushansky 를 사사하며 마스터 클라스및 유럽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고 세기의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Zoltan Kocsis 로 부터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피아니스트, 세계적인 지휘자 카레라스로 부터 앞으로 눈여겨 봐야 할 아티스트로 찬사 받았다.
뉴질랜드및 호주, 미국, 유럽, 일본에서도 활동하였고 2008년 카레라스의 지휘아래 World Heritage Site 로 지정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Palau de la Musica 콘서트 홀에서 연주되었던 베토벤 협주곡 4번은 촬영되어 UNESCO 공식방송으로 유럽 전 지역에 방송되었다. 그 외 세계 유명음악 페스티벌 MITO Settembre Musica에 초청되어 밀라노와 토리노에서 독주회, IV Festival Pianistico Internazionle 에 개막식 콘서트에 초청되어 독주회를 가졌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TV 프로그램에서 연주, 그외 대사관, IOC 위원, 세계 정치인및 세계적인 대기업등에 초청되어 독주하는 다양한 활동을 해왔지만 연속된 해외거주 및 활동, 연습과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악화로 2010년부터는 활동을 많이 중단해왔다. 하지만 점차 회복하며 2012년부터는 다시 활발하게 활동할 예정이고 어린 나이부터 관심을 가졌던 기부활동에도 오는 11월에 열릴 제 1회 Gift of Music 콘서트를 뉴질랜드에서 개최하며 수익금 전액을 기부해 불우한 아동을 돕고,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클라식 음악을 대중에게도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유럽에서 음악 활동 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피아노를 시작한지 어느덧 20년 가까이 되고 있다.연주회를 하면서 수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 중 가장 최근 기억되는 건 IV Festival Pianistico Internazionale 개막식 독주회 초청되었을 때 일이다. 그 당시 불행하게 심한 인플루엔자를 앓아 엠뷸런스 신세를 지는 바람에 연주회 바로 이틀 전에 어쩔 수 없이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계약이 끝난 연주를 취소하게되면 페널티까지도 낼수있는 상황에 가지만 너무 감사하게도 아무런 문제없이 오히려 폐막식 독주회의 기회를 주는 부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 역시 건강이 회복되기는 커녕 장염까지 더해 앓고 있었지만 더 이상 취소할 수가 없어 기차에 몸을 싫고 무작정 가서 연주를 했던 기역이 난다. 연주 당일 아침 열 39도, 살은 평소보다 7kg가 늘고, 취소가 불가피 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기회를 놓치고 싶지않은 욕심에 해열제 주사, 약을 있는 데로 입에 넣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무대에 올랐다. 연주 내용이 방송될 연주라는 걸 알았지만 무대 오르기 바로 10분 전 까지만 해도 아파서 방송이고 뭐고 제발 한 시간 반, 끝까지 칠 수 있을 힘만 이라도 하고 기도했었다. 하지만 막상 무대에 오르고 보니, 아프긴 커녕 혹시 내가 너무 뚱뚱해 보이진 않는지, 계속 흐르는 콧물이 카메라에 잡힐까 하는 걱정으로 시작해 준비해 온 곡에 몰두하느라 평소의 컨디션보다도 훨씬 힘있게 쳤다. 물론 연주회를 끝나고는 다시 엠뷸런스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지만.. 겉으로는 너무 안 아픈 척 당당한 척 했기에 정말 괜찮은 줄 알고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아 연주가 끝나고 혼자 호텔방에 돌아와서 있는 약을 털어먹으며 서글퍼 펑펑 울던 기억이 있다. 살도 찐데다 전날 밤에 울어서 퉁퉁 부은 눈 때문에 다음날 오후 햇빛도 없는 막 시작된 싸늘한 봄에 기찻길 4시간 내내 썬글라스를 끼고 앉아 주위 눈총을 받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뉴질랜드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고 스스로가 배울게 너무 많은걸 잘 알기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내 경험에서 느끼고 배운걸 말한다면 음악을 전공한다고 해서 무조건 연습과 기교에만 몰두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 또한 한때 그랬듯이 어린 학생들은 단 일분 일초라도 다른 필수과목이나 이론은 제외하고 오로지 연습에만 몰두해야 잘 될 수 있다라는 압박감 같은 걸 가지는데, 음악과 모든 예술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에 채워지는 게 많을수록, 경험이 많을수록, 실패와 아픔이 클수록 성숙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연습도 중요하지만, 그 외 다른 취미생활이나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한다.
글,사진: 김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