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기 적성을 찾아 취업에 성공한 교민 유솔 씨가 있다.
어려서 부터 시작한 발레를 시작으로 수 많은 직업군에 도전과 실패의 연속을 통해서 소중한 자기 적성을 찾았다고 한다. 그녀는 많은 도전과 실패가 없었으면 아마도 지금에 나를 찾지 못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현재 세계 10대 광고 대행사 중 하나인, Ogilvy 뉴질랜드 지사에서 “컴퓨터 웹디자이너 / 웹개발자(web designer / developer)”로 일하고 있는 교민 유솔씨를 만나 보았다.
2003년 1월 10일 서울 출발 , 1월 11일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오클랜드에 도착 하자 마자 Takapuna Grammar School 5th form 으로 입학했다. 뉴질랜드에 처음 도착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영어는 정말 없었다. Hi, hello 이런 단어 말고는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영어는 하나도 없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뉴질랜드학교 첫날, 정말 많이 울고 부모님을 많이 원망 했었다. 그때는 정말 비행기표를 몰래 사서 한국으로 도망갈 궁리를 한적도 있을 정도로 처음에 적응을 잘 못했었다. 학교 수업시간에도 단 10% 도 알아듣지 못하고 칠판만 처다 보고 한숨과 함께 멍 한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정말 힘들게 학교 생활을 했다. 수업시간에 알아듣지 못해서 주변 한국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다 떠든다는 오해로 교실에서 혼난적도 몇 번 있었다. 그러면서 2년 정도 지난 어느날 내가 수업을 잘 따라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신기 했다. 그래도 수업시간 출석부를 부를 땐 항상 가슴이 콩닥콩닥 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자신감을 많이 잃고 모든 일에 소극적인 대응으로 우을증 비슷한 것도 겪고, 정~말 유난히 뉴질랜드 적응에 많은 고생을 했다.
내 것을 찾기 위한 실패의 연속
직업에 대한 도전과 실패는 한국에서 무용을 배우면서 시작 되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배운 무용의 연속을 위해 뉴질랜드에 와서는 발레전공으로 현지 Royal NZ Ballet 에 단원으로 입단하는걸 목표로 삼았었다. 그로인해 남섬에있는 International Ballet Academy 에서 풀타임으로 발레를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발을 다친 후 2주 가량 꼼작 없이 수업만 지켜보면서 느꼈다. “이렇게 한번 다치면 발레는 할 수 없는 일이 였구나” 많은 고민 속에서 내린 결정으로 발레리나의 꿈을 포기 했다. 다시 Auckland로 올라왔다. 다시 올라와서는 7th form 으로 학교를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미 학교가 반학기 이상 지난 후여서 점수를 채우는데 많이 고생했을 했다. 다행이도 대학 입학자격은 나왔고 University of Auckland 에 Bachelor of Performing Arts (Major in Popular Music) 에 지원했다. 7학년 말이 될 무렵 음악을 해야겠단 생각으로 지원하게 되었고 오디션은 랩을해서 합격했다. 하지만 당시 영주권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상태라 (교육비의 큰 차이로) 학교를 미루게 되었고, 미루는 기간 1년을 쉬게 되었다. 쉬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면서 다시 발레의 미련을 버리지 못 하고 발레선생님의 길을 걸어보고 싶단 생각에 AUT 에 Dance 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기보다 필기가 많았던 탓에 애를 많이 먹었고, 결국 학과를 옮기게 되었다. 지금도 내가 왜 그걸 다시 했는지 모르지만 Chinese 전공으로 AUT 에서 1년 동안 공부를 했다. 1년 공부를 하면서 나에 대한 관심사가 디자인이라는걸 알았다. 물론 이 선택도 결코 100% 완벽하진 않았다. 또다시 AUT에 Bachelor of Fashion Design 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Fashion design 을 공부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먼지 알러지 였다. 알러지 때문에 가위질 재봉질은 별로 흥미를 사지는 못했다. 그러면서 점점 Photoshop 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Semester 1 이 끝날무렵, 나는 결심을 하고 현지에서 취직률이 가장높은 Media Design School 에 지원해서 Diploma of Graphic design 을 공부했다. 하지만 Graphic design 으로서만 살아남기엔 그당시에 industry 실정이 좋지 않았고, 정말 큰 맘먹고 (학비가 비싼관계로..) Digital media 를 1년 더 공부했다. 학교 졸업전 3개월 전부터 지인의 소개로 Innovaid 에서 flash application 을 만드는 파트타임 잡을 얻게 되었다. 아침에 9에 시작해서 12시까지 일을 하고 점심 먹고 1시부터 5시까지 학교 생활을 매일매일 했다. 다행이 그 경력으로 졸업직 후 바로 Tailor 다자이너 회사에 Web developer 로 취직이 되었고 현재는 Ogilvy 에서 Interactive designer / web developer로 일하고 있다.
대학교대신 직업 전문학교를 선택
나는 항상 전문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대학교가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을 해왔다. 내가 얻을 수 있는 것과 확실히 배우고 싶은것이 뚜렷하고 또 그 생각을 뒷바침 해줄 수 있는 곳 이라면 어디라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최종목표는 취업이였기 때문에 취직을해서 실질적인 경력을 쌓는 것이 가장 첫번째라고 생각했다. 내가 최종 선택한 MDS(Media Design School) 은 내가 정말 원하던 학교였다. 그래서 2년을 정규대학 4년과 대등 학과과정을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현재 근무하는 Ogilvy 회사 소개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오클랜드에 있는 광고회사이다. Parnell에 위치한 Ogilvy 회사를 간단히 소개를 하면 Ogilvy & Mother Worldwide 에 뉴질랜드 지사 이다. Ogilvy & Mother 는 현재 세계 10대 광고 대행사 중 8번째로 큰 광고대행사이다. 해외에 125개국 497개 지사가 있고 16,000정도 되는 직원이 있다. 오클랜드 회사엔 대략 200명 정도 되는 직원이 있다. 내가 근무하는 부서는 Interactive department,주로 online marketing, web development 그리고 각종 online applications 를 만들기도 하며 Face book 이나 스마트폰 앱등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회사 자체내에서 왠만한 큰 클라이언트들이 원하는것들을 모두 충족시켜줄 수 있는 규모로, Photography에서부터 TVC 까지 커버할 수 있는 큰 인력을 자랑하는 대형 회사이다.
많은 도전과 실패 두렵지 않아
사실 나는 취업하는 가운데 많은 실패를 거듭했지만 정말 운이 많이 따랐다. 취업까지에 힘들었던 점은 따로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학생때 알바를 구한다고 CV를 50장씩 뽑아서 두발로 뛰어다녔을 때가 더 고생 이였다. 지금 Ogilvy 에서 일하기 직전에 한번 난감한 일이 있긴 했었다. 내가 Tailor를 다니다가 북쪽에 다른회사의 인터뷰를 본 후 계약서에 사인만 앞둔 상태에서 우연히 지인 소개로 Ogilvy에서 잡오퍼를 받게 되었다. 내가 항상 원하던 큰 광고회사 중 하나였기 때문에 꼭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다른쪽 오퍼를 거절했었다. 정말 공손하게 사과했지만 엄청 혼났다. -_- 하지만 후회는 전혀 없었다.
뉴질랜드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교민 학생들에게
이것저것 모두 다 해보고 마지막에 찾은 진로라서 나는 정말 더 열심히 했다. 정말 열심히 하는게 최선인 것 같다. 항상 준비되있는 것도 중요한 것 같고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가 온다” 라는 말을 이번에 많이 실감했다. 또 자신이 진짜 원하는게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취직을 목표로 삼아 전문학교에 간 것처럼 분명 다른것들에 중요성을 더 두고 있을 수도 있다.
나처럼 취업이 목표인 교민 후배들은, 미리부터 현지 회사들의 흐름이나 유행, 선호하는 스킬셋 이런것에 관심을 두고 또 자신이 꼭 일하고 싶은 회사 목록을 뚜렷한 목표를 세워가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 하면된다 .. 할 수 있다…. 한다면 한다”. 라고 나에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할 수 있다고 격려를 해 주시고, 내가 늘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또 진로 방향 전환을 하고자 할 때도 변함없이 나를 믿고 많은 격려를 주셨다.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그 과정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추천도서 : 바보들은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글, 사진: 김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