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분 나는 대로 공부를 했어요. 그 때 그 때 기분에 따라 내가 하고싶은 과목이 달라져요. 여러 가지 과목을 벌려놓고 한꺼번에 이것저것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한 과목씩 정해서 그것만 집중적으로 공부해요"
/인/터/뷰/
한 해를 마감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면 뉴질랜드 학교에서도 성적이 우수한 학생과 공로 학생들을 뽑아 시상식을 열고 각종 특별상과 장학금을 지급한다. 올해도 교민 자녀들이 DUX(수석 졸업생)에 선정되며 수석졸업을 했다는 좋은 소식이 많이 들려왔다. Massey High School을 수석 졸업하고 오클랜드 의과대학에 특례입학을 성취한 교민자녀 최재민(18)군을 만나보았다.
명랑하고 쾌활한 인상의 재민군은 얼굴에 ‘빅 스마일’을 띄우고 취재 기자의 질문에 자신의 생각을 또렷하게 말했다.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하면 정말 잠도 자지 않고 내내 공부를 했겠구나 하고 짐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막연한 추측과는 달리 재민군은 공부를 즐거운 일로 여기고 꾸준히 열심히 하여 결과가 잘 나온 경우다.
재민군은 15년 전인 1995년 뉴질랜드로 이민을 왔다. 만 1살 때부터 지금까지 쭉 살아온 것을 감안하면 재민군의 한국말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는 뉴질랜드에서 유치원을 다니고 고등학교까지 마치면서도 한국말을 잃지 않도록 하기위해, 집에서는 한국말을 쓰도록 고수한 집안의 교육 덕택이었다.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면서도 한국어 또한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재민군은 실력을 인정받아 Year4학년을 건너 띄고 Year5학년으로 월반을 한 경험도 있다. 그는 Massey High School에 입학 후 Year10~Year13학년까지 4년간 전교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올해 11월 Prize giving Ceremony에서 졸업생이 수상하는 최고의 상인 DUX(수석)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을 수 있었다. 재민군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한 오클랜드 대학에서는 앞으로 의과대학 3년간 학비 전액의 장학금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노트북 컴퓨터도 지급되었다.
수석 졸업생이 되어 기쁘다는 그는 시상식에서 받은 메달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깨끗하고 하얀 이를 드러내고 싱긋 웃었다. 푸른색 케이스를 열자 DUX라는 글자가 새겨진 수석 메달이 나타났다. 재민군이 목에 수상 메달을 걸고 손에는 트로피를 안으며 포즈를 취했고 기자는 사진기를 열었다. 연이어 터지는 사진 라이트 속에서 미소 짓는 재민군의 눈빛이 총명하게 빛났다.
그러면, 어떻게 이처럼 수석으로 졸업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 그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비법을 살짝 공개해 달라고 했다. 재민군의 공부법은 평범하면서도 독특했다. 그 때 그 때 공부하고 싶은 과목이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는 그는 매일 공부시간과 과목, 분량을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정해놓고 계획에 따라 공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저는 기분 나는 대로 공부를 했어요. 어떤 날은 공부를 열심히 많이 하고 싶고, 어떤 날은 기분에 따라서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요. 계획을 짜놓고 공부를 하면 좋다는 생각은 하지만 일단 과제나 숙제가 있으면 그걸 먼저 끝낸 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과목을 골라서 공부해요. 여러 가지 과목을 벌려놓고 한꺼번에 이것저것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한 과목씩 그것만 집중적으로 공부해요.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시던 하루 3~4시간 자고 공부한다는 학생들 이야기를 들었지만 저는 그렇게 1년 내내 공부만 할 수 없었어요. 밤늦게까지 공부하니까 오히려 건강도 안 좋아지고 효율도 없네요. 그 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 수업을 잘 듣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날 들은 수업 내용을 집에서 다시 읽어보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선생님께 질문하고요. 학교에서 미처 다 풀지 못한 문제가 있으면 집에서 마저 풀어요.”
재민군은 정해진 틀을 싫어하고 자율적인 방식을 좋아했다. 밤새워 공부한 적이 없는 그는 언뜻 듣기엔 계획 없는 공부 방식을 가진 것 같았지만, 자기관리를 잘 하는 학생이었다.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motivation)가 참 중요한 것 같다”고 재민군은 말했다. “저는 시험 시작 몇 주 전부터 준비를 하는데, 기말고사 보기 전의 방학기간을 활용해요. 방학이 시작되기 2주 전부터 조금씩 준비를 하면서 방학기간동안에도 시험 준비와 공부를 했어요. 마감일이 정해진 assignment 과제는 받자마자 도서관에 관련 자료가 있으면 바로 빌려오고 미리미리 조금씩 해 둡니다” 라고 말한 그는 스스로의 의지로 즐기듯 공부하고 있었다. 혹시 과외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재민군은 아니라고 답변했다. 그에게는 공부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좋아하는 것에 오기를 가지는 것. 공부를 하다 보니 잘 해야겠다는 경쟁 심리도 느꼈다고 한다. 마음가짐이 재민군을 수석 졸업생으로 만든 비결이었다.
재민군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화학이라고 한다. 학창시절 배웠던 모든 과목이 다 재미있지만, 그 중에서도 화학에 좀 더 마음에 간다고 말했다. 이유에 대해 묻자, 세상의 모든 것들이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며,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쉽게 만나는 모든 것들이 기본적으로 화학이기 때문에 중요성을 느낀다는 것이다. 재민군이 화학에 특히 마음을 두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지난 7월 일본에서 열린 국제화학 올림피아드(International Chemistry Olympiad)에 참가했던 경험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뉴질랜드 대표 학생으로 선정돼 나머지 3명의 키위 학생들과 일본에서 합숙 생활을 하며 세계 각국에서 모인 국제 학생들을 만나본 경험, 그 캠프 생활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위해 열심히 공부했으며 동메달을 얻는 성적을 기록하고 뉴질랜드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또한 올해 대학교 수학 코스를 배웠다는 그는 화학 다음으로 좋아하는 과목은 계산법(calculus)이라고 말했다.
재민군은 공부 이외 관심사로 음악을 이야기 했다. Year8학년부터 배우기 시작한 바이올린은 학교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되어 올해에는 오케스트라 단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비발디의 바이올린협주곡 ‘사계’를 좋아하며, 급우들과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합주를 한 적도 있다. 하이스쿨 저학년 때는 매일 바이올린을 연주를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했지만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과제 양이 많아져 연주를 매일 하지 못했고 음악은 듣는 쪽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재민군은 독실한 기독교인이기에 술과 담배를 삼가고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술을 즐기는 파티나 모임에 부름을 받아도 일부러 가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클랜드 의대에 진학하여 의과 연구를 하고 싶다는 재민군은 졸업 후 외국으로 나가 공부를 계속할 예정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제가 무엇을 희생하던, 다 돌아올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사회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고 돌려줄 수 있는 것은 건강을 돌려주는 서비스,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연구 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싶습니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는 기도를 하는 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동기부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던 재민군. 평소 꾸준한 복습과 예습으로 수석이라는 결과를 성취한 그가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해 꿈을 그려갈 모습이 기대된다.
장새미 기자 reporter@koreapost.co.nz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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