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도 항상 조국을 위해 끊임없이 봉사하며 뉴질랜드 땅에 한국의 자랑스러운 이름을 알리기 위해 지난 15년을 쉬지 않고 달려온 유 시청 오클랜드 한인회 직전 회장이 공인이었을 때와 그 이후의 삶을 허심 탄회하게 나누기 위해 인터뷰에 선뜻 응해 주었다. 지난 2년 동안 제 9대 오클랜드 한인회장직을 맡으며 오클랜드 교민들의 민원상담 및 뉴질랜드 정부와 활발한 교류를 이루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 왔다는 그는 공인으로써 모든 언행이 매우 조심스러웠고, 가족보다는 한인회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가족의 지원이 있었기에 모든 일을 잘 수행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지난 6월 오클랜드 한인회장직을 내려놓았지만 뉴질랜드와 한국에 대한 사랑이 아직도 남아있어 한국과 뉴질랜드를 지속적으로 왕래하며 교민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업무들을 진행하고 있는 유 전회장은 교민사회가 어려울수록 서로 단합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요즘 같이 힘든 경기침체를 함께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유 전회장은 이민 오기 전 한국에서 학교 급식 사업을 했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손녀가 총재로 있는 피플 투 피플(P.T.P) 클럽에 1981년 가입해서 현재까지 봉사활동을 하는 등 남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인생을 살아오고 있다. P.T.P 클럽 국제본부에서 주는 세계 지도자 상도 거머쥘 만큼 한일 양국 간의 민간교류에 일익을 담당하며 수많은 봉사 활동에도 빠지지 않는 열성을 보였다. 네 명의 자식들에게도 근면검소를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며 운동화를 신을 때도 비가 오면 새 신발, 비가 오지 않으면 밑창이 떨어진 헌 신발을 신으라고 교육할 정도였다. 어느 날 그는 한국의 사회풍토가 본인이 생각하는 근면 검소한 생활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 이민을 계획하게 되었고 1988년 5월 1차 뉴질랜드 현지답사 후 1995년 가족을 이끌고 이민을 오게 된다.
뉴질랜드 이민생활을 하면서도 한국과 뉴질랜드를 오가며 사업을 했지만 아내는 뉴질랜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네 명의 자녀들을 거의 혼자 돌보았다며 아내와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지금도 여전하다고 말한다. 유 전회장은 지금의 본인을 있게 한 조국은 물론 앞으로 그의 가정과 후손들이 살아갈 제 2의 고향 뉴질랜드도 고국 못지 않게 중요하다며,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도 공동체 참여 의식은 변함 없다고 강조한다. 이민 온 지난 15년간 오클랜드 한인회 총회가 열리면 꼭 참석해서 교민들의 소리를 함께 전하고 한인회 회비도 한 번도 빠짐없이 냈으며, 뉴질랜드에서 무언가 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헌혈도 벌써 27번째나 되었다고 하니 뉴질랜드에 대한 그의 사랑도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2007년 5월 제9대 오클랜드 한인회 회장에 당선된 유 시청 전 회장은 교민사회의 중간자 역할을 하고 섬기는 자세로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냉철하게 자신을 관리했으며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뜻을 몰라줄 때는 속상할 때도 많았지만 회장의 입장에서 교민사회의 리더쉽을 발휘하고 교민들이 사랑으로 성원을 해줄 때는 힘이 나서 더욱 열심히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어느 날 쇼핑몰을 걷고 있는데 어느 한 교민이 저를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하며,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된 남편에게도 저를 오클랜드 한인회장이라고 소개하는 거예요. 저는 모든 교민 분들의 얼굴을 다 모르지만 그분들은 공인인 저를 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에 조심하게 되고 타의 모범이 되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오클랜드 한인회장을 하면서 크고 작은 행사들도 많았는데 2009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의 뉴질랜드 방문, 2008년 5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방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방문, 오클랜드 노스쇼어와 한국 포항시 자매도시 추진 등 유 시청 전 회장은 행사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추억이고 배움의 장소였다고 말한다. 또한 전 세계 한인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검토하는 열성을 보이며 좋은 것들은 뉴질랜드 교민사회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추진하기도 했다. 이것의 가장 큰 결과로는 한국 내 8개 유명병원과 의료지정 협약을 맺은 것이다. 그는 인도네시아 한인회가 한국과 의료지정 협약을 맺은 것을 본보기로 뉴질랜드 한인회도 그 방법으로 교민에게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유 전회장은 모든 타인에게는 배울 것이 있다며 배움에는 끝이 없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지난 10월13일 유 시청 전 회장은 전 세계 한인의 날을 맞이하여 한국정부로부터 뉴질랜드 교민사회를 위한 공로로 국민포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별로 한일도 없는데 큰 상을 받게 되어서 부끄럽습니다. 수상의 기쁨을 전 교민과 함께 하겠으며 한인회 고문, 평통협의회 위원, 노스쇼어 코리안 로타리 회원으로 앞으로도 계속하여 교민사회를 위하여 봉사하겠다는 각오로 살 아가겠습니다.”라며 겸손한 수상소감을 밝혔다.
뉴질랜드에 이민을 와서 그가 가장 크게 배운 것 중 하나는‘기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인간은 결국 늙게 되고 죽으면 빈손으로 돌아갑니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는데 사회를 위해서 봉사한다면 그 은혜를 갚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전한다. 그래서 그는 한국의 울산시교육청에 점심을 못 먹는 결식아동들을 위한 지원금으로 매년 5백만 원씩 10년간 총 5천만 원을 지급할 것을 약속했으며, 2006년 10월 교육청에 첫 회분을 기증했다. 매년 11월 3일 '학생의 날'에 즈음해서 성금 전달을 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유 전회장은 부모에게 유산을 받으면 자녀들은 본인이 이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흥청망청 다 써버리고 결국 망하기 마련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자식들이 부모를 떠나 스스로 독립하고 성공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며 때로는 그도 자식들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싶고, 용돈도 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던 것이 오늘날 자식들이 스스로 살아가는 것에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예전에 유한양행을 창업한 고 유일한 박사의 유언 내용이었던 무남독녀 외동딸에게 US 1만 달러만 유산으로 남겼다는 기사를 읽고 그 역시 자녀들에게 뉴질랜드 5만 달러씩(자녀들과 그 당시 약조시 US 2만불)을 결혼비용과 유산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혀 뉴질랜드 교민사회와 한국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와 봉사를 아낌없이 실행해 온 유 시청 전 회장은 "뉴질랜드 사회를 보세요. 뉴질랜드 공원 등 주변 곳곳을 둘러보면 사람 이름이나 가족 이름이 적힌 기념비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사후 본인의 재산을 정부나 사회단체에 기증해 남을 위해 쓰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며 우리 교민 1세대가 거름 역할을 해서 우리 후손들이 건강하고 튼튼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강진 기자 reporter@koreapost.co.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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