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더니든에서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친목과 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오타고 참전용사회로부터 “명예 참전용사 회원증”을 받은 교민이 있다. 현재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살 수 있는 것은, 과거에 우리나라를 위해 싸웠던 수 많은 영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한국전쟁 중 먼 타국까지 달려와 피를 흘려가며 싸워준 뉴질랜드 참전용사들도 많이 있다. 뉴질랜드는 한국전쟁 16개 참전국의 하나로 6천여명의 군인이 참전했고 45명이 전사했다.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해외 참전용사들에게 받은 큰 은혜를 조금씩 갚아나가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그들과 함께 했지만 이제 그들은 노령으로 시간이 많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뉴질랜드 용사들을 만나고 함께 행사를 하고 있는 더니든 교민, 김의자 씨를 만나 보았다.
뉴질랜드에 이민을 와서 30년 동안 살고 있으면서 많은 현지 단체들과 이해 관계 속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전쟁 참전용사회”는 처음 만남부터 지금까지 무엇인가 남다른 단체였다. 목숨을 걸고 전쟁에 참전했던 그들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었다. 이민생활을 하면서 아무도 우리 소수민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을 때도 그들은 달려와 주었고 같이 고민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는 같이 울어주고 슬퍼해주는 유일한 단체였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은혜, 이제 우리가 갚을 차례라고 생각하고 벌써 20년 째 그들과의 만남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20년전 참전용사들과의 만남 시작
1995년 박홍식 초대 더니든 회장을 중심으로 20여 가구의 교민들이 모여 더니든(Dunedin) 한인회를 결성하였다. 딸(소영) 친구의 친척이 6.25전쟁 참전용사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 이 들과의 만남이 시작된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그분이 우리 가정을 먼저 찾아 와서 반갑게 우리를 반겨 주었다. 그 해 RSA Club을 방문해 6.25 기념일에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을 하고 한국의 발전상을 보여주며 감사함을 표현하기 시작 했다. 60여명의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따뜻한 우정과 인간애에 가슴이 뭉클할 때가 많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까지 20년째 정기적으로 하는 행사가 되었다. 하지만 20년전의 60여명의 참전 용사들이 이제는 고령으로 한 두 분씩 하늘 나라로 떠나면서 이제는 8명의 참전용사들이 행사에 참석해 해마다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이제 남은 8명의 참전용사들에게 더욱더 많은 관심으로 감사에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다행히 우리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전용사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이 참석해 행사는 점점 커지고 있어 조금은 위안은 되지만 행사의 주최자인 참전 용사들이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현실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더니든 참전용사들과 함께
지난 7월25일 식당을 빌려 학생 대표, 교민, 참전용사와 그 가족 분들을 초청해 휴전협정일(7월 27일) 기념식을 가졌다. 20년이나 만나다 보니 이젠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6.25전쟁일 이나 7.27 휴전협정일에 참전용사(K_force)와 그 가족을 저녁에 주로 초청해 음식대접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더니든 교민들이 한 접시씩 정성 들여 만들어온 한국고유 음식으로 그들과의 만남을 이어 왔다. 고령으로 참전 용사들의 참석자들이 점점 줄어 들지만 그들의 가족들이 참석하면서 제법 규모 있는 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더니든 시장님을 비롯해 대한민국 대사, Michael Woodhouse 이민성 장관, 멜리사 리 국회의원 등 많은 유명 인사들이 참석해 두 배로 감사를 표현해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에 힘이 된다. 20년전 처음 시작했던 행사를 생각하면 기쁨이 벅차 오른다. 행사를 시작하는 인사말에 참전용사분들의 희생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강대국이 되었으며 당신들은 우리에게 영원한 영웅(Hero)라는 말을 꼭 한다. 요즘은 참전용사들이 연로하여 밤 운전을 할 수 없는 관계로 저녁 행사에서 점심 행사로 바뀌어 가고 있다. 하지만 참전용사 가족들이 행사에 참석 하면서 그 자손들과도 유대관계를 가져 우의를 돈독히 하고 있다. 이런 우리의 행사에 보답하는 의미로 참전용사들의 모임행사에 우리를 초대하기도 한다.
오는 9월에도 더니든 한인회 대표로 참석을 한다. 또한 크리스마스 때도 참전용사들의 파티에 우리를 초청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지난번 첨전용사 파티에 초청을 받고 참석 했는데 한 참전용사가 이야기를 시작 했다. 한국전쟁의 당시 상황과 옆에서 쓰러졌던 전우들을 회상 하면서 눈시울을 적시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면서 마지막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했다. “이제 서로가 서로를 아끼면서 한국과 뉴질랜드는 서로 베푸는 나라가 되었다. 당신네 나라 한국은 받기만 하던 나라에서 이제 베푸는 나라가 됐다” 고 이야기 하면서 “당신네 나라의 민족은 고마워할 줄 알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민족” 이라고 이야기를 해서 가슴이 뭉클했던 적이 있었다.
명예 참전용사 회원증 받아
지난 2008년 12원14일 참전용사들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되어 갔을 때였다. RSA Otago 지역 회장으로부터 명예회원의 칭호를 받았다. 이제 한 식구라고 그들은 반갑게 박수와 포응으로 대접해 주었다. 더욱더 열심히 봉사하라는 의미로 생각하고 더욱 열심히 참전용사들을 위해 봉사 하고 있다.
한국정부에서는 해마다 뉴질랜드(K-force) 참전용사분들을 몇 분씩 한국으로 초대해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노령으로 건강상, 재정상의 문제로 발전한 한국의 모습을 실제로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우리 옆집에 부인과 사별하고 홀로 살고 있는 참전용사 한 분이 살고 있다. 한국 음식과 한국과자를 가져다 드리는데 너무 좋아하신다. 특히 한국의 믹스커피를 좋아해서 계속 공급하며 말동무도 하면서 한국의 현재 모습을 비디오로 보여주며 많은 이야기를 한다.
작년에는 참 오랫동안 알고 지낸 참전 용사 한 분께서 돌아 가셨다. 화환을 보내려다 대사관에 전화를 했다. 더니든 한인회 보다는 대사관이 보내는 것으로 카드를 쓰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 분들, 가족들에게는 큰 명예라고 생각해서였다. 장래식에서 참정용사의 마지막 떠나는 관 위에 놓인 화환을 보며 참 잘 생각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제 남은 8명의 참전용사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많은 생각에 잠긴다.
더니든, 한인회장으로 10년 봉사
5대에서 10대까지 10년째 교민들을 위해 봉사 하고 있다. 더니든은 남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교육의 도시이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오타고 대학교와 뉴질랜드 유일의 치과대학이 여기에 있다. 뉴질랜드 전국의 많은 교민들이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이곳에 거주하는 교육의 도시이다. 바다와 산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도시로 사람들은 대단히 친절하다. 더니든 하면 우선 추운 지방이라고 하지만 강수량은 오클랜드 보다 적다. 살다 보면 상큼한 날씨라고 많은 사람들이 더니든을 표현 한다. 더니든에 거주하는 우리교민들은 100여 가구의 교민들과 학생들이 별다른 사건 사고 없이 오손 도손 살아 가는 평화로운 곳이다. 생업에 바빠 자주들 만나지는 못하여도 언제나 도움이 필요하면 거기에 도움의 손길을 주는 이웃이 있다고 믿고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곳 이라고 더니든 교민들은 말한다. 교민 수는 적지만 한 가족처럼 모두들 이해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요즘은 젊은 세대가 교민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물론 바쁘기도 하겠지만 의식 자체도 기성세대와는 많이 달라 집에서 부모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것 같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작은 거인이라 생각한다.
취재 협찬 : 한국언론진흥재단
글,사진: 김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