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 노인들, 연금 나오면 시골로 시골로
주택융자(Mortgage)를 받아 어렵게 마련한 ‘내 집’의 융자금을 갚느라 평생 등뼈가 휠 정도의 삶의 고통이 예전에는 은퇴할 때까지였으나, 지난 10 여년간 지칠 줄 모르고 가파르게 오른 오클랜드 주택 가격이 이젠 은퇴 이후의 ‘삶의 질’마저 좌우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최신 인구센서스(2013’) 결과에 따르면, 오클랜드의 경우, 모기지 없이 내 집을 가진 비율은 단지 25%에 불과한 반면, 모기지를 끼고 내 집 마련한 비율이 36%, 렌트집에 세입자로 사는 비율이 39%인 것으로 밝혀졌다.
타 도시로부터의 전입과 대부분 대도시에 정착하는 이민자수 증가로 인한 오클랜드 인구증가와 이에 따른 주택 공급물량 부족으로 지난 10여년간 오클랜드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 지난해 12월의 오클랜드 평균(median) 주택 판매가격은 61만5천달러나 됐다.
지난 해부터 뉴질랜드 중앙은행(RBNZ)이 주택가격대비 은행 융자율(LTV)을 80%로 제한하는 은행융자 제한조치를 시행한 이후, 주택 구매자의 자기부담 비율이 높아져 생애 처음으로 내 집을 구입하는 주택구매자의 연령이 만 36세까지 올라갔다. 게다가, 아직 시행은 안되고 있지만, 뉴질랜드 정부의 재정능력에 비춰볼 때 조만간 연금 수혜연령도 만 65세부터에서 만 67세부터로 늦추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안까지 받은 처지다.
은퇴연령에 도달해 노인연금(Superannuation)을 받게 되면 갚을 모기지가 남은 오클랜드 노인들은 집을 팔아 모기지를 모두 청산한 뒤, 주택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타우랑아, 내피어, 말보로우 같은 지방 중소도시로 이사가는 수 밖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인연금은 은퇴연령에 도달할 때까지 자기 집(freehold)을 마련했다고 전제하고 마련된 연금제도라 시간이 갈수록 연금 수혜액의 실질적인 혜택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욕망을 포기하고, 바닥에서 출발하라”
그러나, 일찍부터 내 집 마련 계획을 세워 단계별로 실천하면서 마침내 은퇴이전에 ‘모기지 없는(Mortgage-free)’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경우도 드물지는 않다.
뉴질랜드 헤랄드지에 따르면, 오클랜드 남부의 Manurewa지역에 거주하는 40대(남편 45세, 부인 40세) 어느 키위 부부의 경우, 지난 18년간 집사고 팔기를 세 번 거듭한 끝에 마침내 원하는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
첫 번째 집은 1997년 오클랜드 남부의 Greenmeadows지역에서 15만6천달러를 지불하고 구입했다. 이곳에서 7년을 살고 난 2004년, 이 집을 팔고 역시 남부 오클랜드의 신개발지 Wattle Downs지역에 있는 더 나은 주택을 33만3천달러에 구입했다. 이 집을 2013년에 다시 팔아서, 마침내 현재는 Botanic Gardens지역의 55만7천달러짜리 멋진 세 번째 집에서 살고 있다.
비록, 지금도 이들 부부는 은행에 모기지 부채 12만6천달러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더도 말고 현재의 고정수입만 계속 들어 온다면 적어도 남편이 60대가 되는 16년 후에는 은행융자 빚을 모두 갚아 평생 목죄어 온 ‘모기지(?)’에서 해방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들처럼 젊어서부터 ‘부동산 사다리’를 올라타 은퇴 전 모기지 없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 성공자들은 생애 첫 내 집 마련을 준비하는 주택 구매자들에게 우선, 뜬 구름 잡는‘비현실적인 기대’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생애 처음으로 내 집 마련하려는 젊은이들에게 “바닥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구나 바다가 보이는 노스쇼어 Bay지역이나 ‘강남 8학군’에 해당하는 Epsom/Remuera지역에 살고 싶어 하지만, 자신의 재무상태를 똑바로 파악한 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집 마련하고 모기지 갚아나가느라 ‘인고(忍苦)의 세월’을 살아온 이들은, 무리하게 90%까지 모기지를 최대한 빌려 근사한 새 집을 산 많은 지인들이 사업부진이나 금리인상의 여파로 얼마 못가 결국 모기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원하지 않는 가격에 집을 처분하는 불행을 자주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 동안 그 부부들이 피땀 흘리며 갚았던 모기자 이자는 (초기 몇 년간 모기지 상환금액은 원금보다 대부분 이자로 구성돼 있다) ‘고리대금업자(?)’인 은행의 배만 불려준 것이다.
이들은 말한다. “우리도 처음엔 종자돈이 없어서 첫 번째 집을 남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 지역 - 범죄율도 높고 학군도 좋지 않은 - 에서 장만해 출발했다. 모두가 살고 싶어하는 좋은 주거지역을 선택할 재정적 능력이 없어 당시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젠 진짜 남들이 선호하는 지역에 멋있는 집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은 영광스런 오늘을 위해 젊어서부터 ‘부동산 사다리’ 계획을 세워 단계별로 내 집 마련 작전에 돌입했고(steps), 열심히 일했고(hard work), 원하는 욕망들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많은 희생(a lot of sacrifice)이 뒤따랐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병갑 객원기자>
[이 게시물은 KoreaPost님에 의해 2015-01-30 07:54:08 칼럼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