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링턴 예술기행(Ⅴ)

웰링턴 예술기행(Ⅴ)

0 개 3,880 배수영


▶ City Gallery

웰링턴 시빅 스퀘어(Civic Square)에 있는 시티갤러리(City gallery)는 1980년에 설립되었으며, 진보적성향과 모더니즘스타일의 많은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비주얼 아트, 건축과 디자인이 소규모 지역과 국제 전시 프로그램을 통해 웰링턴에서 전시되고 있다. 특별전시를 제외한 일반 전시는 무료 관람이며, 사실상 일반 전시만으로도 충분히 갤러리의 특색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전시되어진 작품들의 색깔이 뚜렷하다.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각으로 현대예술 즉, 모더니즘 작품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세계관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대예술이 발생하게 된 근시대적 배경과 상황만 알고 있다면 누구나 작품을 이해 할 수 있다. 16, 17세기의 모습을 상상 속에서 그려내야만 인상주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현대예술은 우리의 삶과 시간적 폭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대를 얻어내기가 쉽다.

현대예술의 탄생 배경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근본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도구이자 수단으로써의 기능을 하며, 장르의 경계를 넘는 탈예술화를 지향하고 있다. 종래의 예술은 재현=모방(mimesis)으로서의 기능을 가졌으나, 데카르트 이래로 인간의 이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에서 한 개인이 가지는 역할과 의의가 무엇인지 탐구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자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 실존개념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인간의 존재의 이유가 신에 의한 것이라고만 믿었던 통념들이 점차 바뀌면서 예술적 사조도 변하게 되었다. 한 인간의 고뇌와 갈등, 현시대가 보여주는 정치적 사건들과 사익(私益)을 위해 무분별하게 자원을 이용하는 이기심까지도 작품속에 반영되었다.

예를 들어, 비엔나 행동주의는 퍼포먼스를 통해 오스트리아에 만연하고 있던 종교적 억압과 사회계층간의 갈등을 표출하였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남준은 플럭서스(Fluxus) 예술가로 다양한 예술양식(음악, 무대예술, 시각예술 등)을 융합하여 개념미술, 포스터모더니즘, 행위예술 등 통합적인 예술개념을 탄생시켰다. 반면, 앤디워홀은 미국의 자본주의와 영화산업이 만들어 낸 헐리우드 스타들을 현대사회의 새로운 개념으로 작품활동을 했으며, 예술 작품은 하나여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공장을 만들어 작품을 판화에 찍어내기도 했다.

소위 예술을 즐길 줄 안다는 사람들이나 평론가들 중에서는, 현대예술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견해가 많다. 고흐나 르누와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섬세한 붓의 터치감이나 적절한 색깔의 배치와 명암의 조절 등을 볼 수 없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또한, 작품을 보았을 때 우리의 마음에 평온함과 충만함을 가져다 주어야 하는데, 현대예술 중에는 혐오감이나 거부감을 주는 작품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현대예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일 뿐이다. 현대예술은 단순한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던 과거의 미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의 괴로움까지도 포용하고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모든 사물의 존재에는 이유가 있듯이, 작품이 주는 첫 인상만 가지고 섣불리 판단하거나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독단적인 견해에 빠질 수 있다. 시티 갤러리의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부담없이 작품을 감상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재밌는 그림과 독특한 디자인의 형태를 가진 작품들이 많으며, 감상자의 주체를 중시하는 개념에 기초를 둔 비디오 아트를 볼 수 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세밀히 살펴보거나,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작품에 대입해 보는 방법이야 말로 더 없이 좋은 감상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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