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이 간다(3)
남북을 거치는 12시간의 대장정
기차 시간에 맞추어 알람이 울렸다. 웰링턴으로 여행가는 날이다.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난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30분 일찍 기차역에 도착했다. 벌써 역무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금방 체크인하고 기차에 올라탔다. 자리를 찾기 전에 커피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커피 한잔!!!
약간 날씨가 흐렸지만, 흐리면 흐린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기차가 출발신호 기적을 울리며 미끄러져 갔다. 출발이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여행이다. 웰링턴 가는 기차! 북섬을 가로질러 12시간의 대장정의 시작이다. 그런데 바로 웰링턴으로 가지 않고 그전 역인 파라파라무로 발권하였다. 왜냐하면, 지인도 있고 피터 잭슨의 고향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여행은 경치도 중요하지만, 역사적인 유명인이나 위인들의 고향이나 활동지의 방문 또한 의미 있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 감독 피터 잭슨의 발자취를 느끼고 싶었다.
비우고 내리고 떨치고 떠난다
그 영화의 팬이기도 하고 수차례 호빗 마을을 다녀온 터라 더더욱 그에 대한 기대가 컸다. 기차는 오클랜드 시외를 벗어나면서 남쪽으로 달렸다. 첫 번째 역인 해밀턴을 지나 오투우랑아에 도착했다. 이곳은 와이토모로 가는 길목의 마을이었다. 눈에 익었던 터라 몇 번씩 눈이 갔다. 잠시 후 기적을 울려 출발을 알리며 기차는 남쪽으로 남쪽으로 치닫고 있었다.
기차는 테제베. 프랑스에서 만든 열차라서 스마트하고, 편안하며 깨끗하였다. 나 이외는 거의 유러피안이었다. 혼자 이방인처럼 조용히 창가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음악도 듣고, 책장도 넘기고, 낮잠도 자고, 비우며, 버리며, 떨치며, 릴렉스, 리프레쉬, 레스트하며 맘 편하게, 눈 즐겁게 몸이 쉬도록 기차의 미동이 나를 재운다. 여행사로 일을 메고 여행자는 백을 들고 여행가는 글을 쓴다. 여행은 작은 인생이고 인생의 긴 여행이다. 또한, 여행은 걷는 책이고 책은 앉은 여행이다. 나는 여행과 책 그리고 시로 글쓰기로 페이지를 넘긴다.
이 기차는 공식 명칭이 노던 익스프레스라 한다. 북섬의 심장부를 거쳐 푸르고 드넓은 농장지대와 정글림, 아슬아슬 협곡을 지난다. 통가리로 국립공원을 비롯한 화산 활동 등 중심지를 통과하고 철도 기술의 절정을 보여주는 유명한 라우리무 스파이럴을 지난다. 가는 동안 몇몇 정거장을 지나지만, 내셔널파크 정거장이 눈에 띠었다.
멀리 산 정상에 눈이 쌓이고 아래에는 햇살이 대조를 이루며 내리쬐고 있었다. 큰 차창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기차여행의 묘미를 더해주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날씨도 변화무쌍하여 맑음 흐림 그리고 비와 바람이 번갈아 지나갔다. 드디어 파라파라무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지인과 반갑게 인사하고 파라파라무 몇 곳을 들렸다.
피터 잭슨의 모교와 그의 발자취
우선 피터 잭슨의 모교 카피티 컬리지를 들어가서 학교 로비에 있는 사진과 기념 동판 등을 둘러보며 그의 행적과 활동을 읽어보았다. 어릴 적부터 판타지아 소설이나 영화에 심취했던 그는 결국 습작과 노력, 창의적 연구 끝에 반지의 제왕을 탄생시켰다. 학교를 뒤로하고 클래식 카 전시장으로 향했다. 작은 마을에 많은 클래식 카가 전시된 것을 보고 놀랐다. 여행사라고 하니 무료로 입장시켜 주었다. 오래된 차이지만 값이 제법 나갈 차들이다. 로마의 휴일 오드리 햅번이 타던 차, 알 카포네가 타던 차, 델마와 루이스가 타던 차 비슷한 것들이 즐비했다.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연신 카메라를 눌러 여러 컷을 찍었다.
이곳을 뒤로하고 파라파라무 골프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아시는 대로 뉴질랜드 10대 골프장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며 뉴질랜드 토너먼트가 열렸던 곳이다. 또한, 타이거 우즈도 방문하였던 곳인데, 그의 방문은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의 친분으로 이루어졌다. 참으로 멋진 곳이다. 그린도 좋고 시야도 확 트인 것이 국제 규격의 훌륭한 골프장이다. 이어서 근처의 바닷가를 거닐었다. 멀리 파라파라무 아일랜드가 보였다. 그곳에서 영화 ‘킹콩’을 촬영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영화의 CG 그리고 그 킹콩과 공룡의 싸우는 장면에서 외모와 활동 디테일한 부분이었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CG를 이용한 교과서적인 영화로 평가받고 있으며 나 또한 이 영화에 매료되었었다.
시간이 늦어 숙소로 차를 돌렸다. 약간 피곤하였지만, 기차에서 가면을 몇 차례 한 터이라 견딜 만했다. 지금부터 삼겹살에 소주 파티가 벌어졌다. 오클랜드에서 서울 손님이 오셨다고 갖가지 반찬과 고기가 가득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밤이 깊었다. 다음날도 아침부터 분주했다. 웰링턴으로 가는 길에 웨타 반지의 제왕 촬영지를 들렸다. 각종 소품들과 캐릭터를 가진 인형들이 즐비했다. 이곳은 실제 영화를 찍은 곳이기도 하여 감회가 새로웠다. 또한, 영화의 장면 장면이 떠올랐다. 이곳 문을 나서자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약간의 비도 흩뿌렸다. 역시 바람의 웰링턴이었다. 바닷가 길을 따라가노라니 이윽고 시내에 도착했다. 오래된 건물 사이로 오가는 모습을 보니 오클랜드와 사뭇 달랐다.
한국인의 자부심과 긍지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전동차였다. 우리나라 전동차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현대마크가 뚜렷했다. 알고 보니 이 기차가 전부 우리나라 현대가 제작 설치했다고 한다. 지사장님을 만나게 되어 차 한잔하며 공사 중 에피소드와 뒷이야기를 들으며 흐뭇, 뭉클, 우쭐함을 느꼈다.
웰링턴 전망대는 간이 기차를 타고 올라갔다. 덜커덕덜커덕 고전풍의 기차가 운치를 더해주었다. 그러나 바람 때문에 경치를 채 보지도 못했는데 비가 내려 고개 숙인 채 시내로 내려왔다. 와우 대단한 바람. 바람을 피해 박물관으로 향했다. 1800년도 초기 역사와 유물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의 역정을 돌아보며 또 다른 뉴질랜드를 보게 되었다. 오클랜드 올라 갈 때는 비행기를 이용하게 되었다. 시간이 임박하여 서둘러 공항으로 갔다. 가는 길에 바람, 비 그리고 파도가 무척이나 거칠었다. 핸드폰으로 비행기 출발 가능 여부 확인하였다. 아뿔싸 오늘 비행기는 출발하지 못한다. 일기예보와 공항소식을 번갈아 체크하며 하루 더 웰링턴에서 묵기로 했다. 바람은 웰링턴을 사랑하는가 보다. 아 바람, 바람, 바람.
홍길동 투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