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보면 이번 여행의 방문지는 첫 번째 넬슨, 두 번째 팬케이크록스, 세 번째는 폭스 빙하이다.
넬슨을 떠난 후 다음목적지는 푸나카이키의 팬케이크록스였다. 남섬 웨스트코스트의 대표도시 그레이마우스 가기 전 해변가 푸나카이키 팬케이크록스를 가기 위해서 산길과 바닷길을 2시간 정도 달렸다.
처음 시작은 산길을 지났지만, 웨스트포트부터는 오른쪽으로 바닷길을 끼고 달렸다. 가는 길에 암초와 암석이 있어 전망대에 올라섰다. 바위들은 여러 개로 사자, 코끼리, 거북이 등 다양한 모양과 자세를 갖추고 있어서 휴식 겸 사진 촬영을 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30여 분을 달려서 팬케이크록스 팻말이 나타났다. 조그마한 카페와 기념품점, 화장실이 있는 방문센터에 주차를 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탄성과 환호 그리고 박수가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
각기 모양을 달리하며 뽐내고 있는 바위에서 수천 만 년 전 지구의 역사를 다시 보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숙연해지면서 신기하고 새로운 곳을 보고 듣고 감상하니 기분이 최고였다. 오랫동안 고대했던 숙원 사업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 맛에 여행을 하는가 보다.
팬케이크 바위의 기초는 3 천만 년 전에 죽은 해양 생물과 식물의 미세한 파편이 표면 아래 약 2km 떨어진 해저에 떨어졌을 때 형성됐다. 엄청난 수압으로 인해 더 강한 석회암층과 부드럽고 얇은 진흙이 풍부한 층으로 굳어졌다.
지진 작용으로 석회암이 해저 위로 들어 올려 져, 물, 바람과 염수 분무가 부드러운 층을 침식하여 단단한 석회암 더미처럼 ‘팬케이크록스’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이번 여행에서 최고라고 치켜세우고 연신 감탄과 감동을 자아냈다. 나 또한 오래전 숙제(팬케익록스 방문)를 풀고 보니 체증이 뚫리면서 문화적 갈망에 충족되어 기쁨을 더했다.
강추! 푸나카이키의 팬케이크록스! 이곳은 만조 시 파도가 치면 물기둥이 뿜어 올라와 더 멋진 풍치를 자아낸다. 자연의 경이로운 신비로움에 잠시 숙연해지고 겸허해지는 것은 나만의 기분일까?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며 그레이 마우스로 향했다. 눈 길은 도로를 향하고 마음은 목적지를 향하고 머릿속은 시로 향한다
광야에서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시인 이육사-
폭스 빙하! 지구의 수천 년 전 역사 속에 우뚝 서다. Once in a life time
다음 목표는 폭스 빙하이다. 가는 길에 특히 호키티카 바닷가는 바람이 세서 나무들이 육지 쪽으로 쏠리는 기이한 현상이 여기 저기 연출되었다. 서해안은 바람이 세기로 유명하고 파도가 높아 서핑을 즐기기에 좋으며 샌드듄도 유명하다.
오른쪽으로 바다를 끼고 한참을 내려가 내륙 숲 속에 접어들었다. 바다와 숲이 어깨동무하며 숨바꼭질하는 듯했다. 그 옆에 호수가 웃으며 지켜보았다. 호수 갯수는 크고 작게 10여 개가 되는 듯했다.
참으로 축복받은 나라다. 바다, 산, 숲, 평야, 구릉 지대, 호수 등 동식물과 인간이 살기 좋은 최적지이다. 그러면서 이 자연을 잘 관리하여 도로와 도시가 형성되고 그것을 보수 유지하면서 각기 지역적 특징을 잘 살렸다. 예를 들면 산업시설, 농수산물, 관광지 등 상징적인 간판과 시설물들을 배치하여 지역 특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유인 또는 무인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어서 그곳의 특징과 장점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 주변에는 가는 곳마다 캠퍼밴과 캠핑사이트가 있어서 뉴질랜드가 캠핑천국임을 증명하고 있다.
도로와 거리는 정리정돈뿐만 아니라 청소가 잘 되어있어 쓰레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간혹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 한 두개가 있을 뿐이었다. 쓰레기야 너는 어디 있니? 나는 네가 보고싶다.
한참을 달려 폭스 빙하에 접근하면서 산과 계곡, 산안개와 물 빛깔이 그 자태를 뽐내며 우리를 유혹했다. 산과 계곡의 무한 경쟁인 듯하다. 산의 모양과 형태는 참으로 다양했다. 눈이 내려 밀린 듯 민둥산, 때로는 나무숲으로 이루어진 산, 드넓은 초지가 있는 구릉 지대 산 등이었다.
큰 산과 깊은 계곡은 크고 웅장했다. 눈을 돌리며 이곳저곳 사진 촬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산, 계곡, 다리 그리고 그 다리 아래로 흐르는 다양한 물빛이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았다.
어두워지며 폭스 빙하 마을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 늦은 시간이라 간단히 요기하고 막걸리와 안주를 펼쳐 놓고 피로를 풀며 내일을 기약했다. 이튿날 아기다리고 고기다리던 날이 밝았다. 이곳을 위해 그 먼 곳을 달려오고 달려왔다.
헬기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체크인하고 절차를 밟으면서 기다리는 중에도 설레면서도 약간은 무서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한구석을 차지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인솔자로서 책임감이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절차를 밟은 다음 드디어 헬기 프로펠러가 돌아가면서 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영화나 게임의 한 장면 같이 스릴과 박진감이 넘쳤다. 이륙한 지 얼마 안 되어 폭스 빙하 중턱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눈을 던지고 눈밭에 뒹구르고 어린아이처럼 마냥 좋았다. 최고였다! 일생의 단 한번! (Once in a life time). 나중에 일기예보를 보니 우리가 떠난 후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렸다.
우리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 폭스 빙하 빌리지에 도착 후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호키티카로 향했다. 2시간을 운전하여 호키티카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으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여기는 지나가는 마을이라 크게 눈에 띄는 것들은 없었으나 옥으로 유명한 마을로 정평이 나 있다.
아서스패스-광고와 영화, 사진작가들의 집결지이며 놀이터
이어서 아서스패스 국립공원에 접어들었다. 작년 겨울에 기차를 타고 설경을 구경한 바가 있어 두 번째 방문이었으나 차로 운전하는 것이 몇 배 이상 즐거움이었다.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다르겠지만 아서스패스는 산, 강 계곡, 다리, 형형색색의 물빛들이 장관이었다. 산세의 규모와 크기가 엄청나고 계곡도 깊었다. 이곳은 남섬의 등뼈 역할을 하고 있는 서던 알프스 산맥이다.
이 산계곡을 따라 만든 길이라서 높거나 가파르지 않고 운전하기 좋았다. 우리나라로 얘기하면 태백산맥의 대관령과 같은 그런 곳이다.
중간에 전망대에서 두세 번 쉬면서 사진을 찍으며 멋있다는 말이 저절로 여러 차례 터져 나왔다. 오는 길에 데블스 펀치볼 폭포를 들렸다. 역시 산세가 높고 깊어서 폭포 또한 장관이었다.
131m 높이로 장관을 이루는 데블스 펀치볼 폭포는 지난번에 다녀온 라글란 폭포의 3배나 되는 높이였다. 물론 사진은 필수, 감상은 선택이다.
폭포를 뒤로하면서 운전하니 특이한 돌산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이 바로 나니아 연대기 촬영지인플록 힐이었다. 다른 곳은 큰 돌이나 바위가 없었으나 이곳만 유일하게 2~3곳 산봉우리에 위치해 있었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멋진 장소였다.
이곳은 영화나 광고 촬영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멀리서만 사진을 찍고 시간이 없는 관계로 서둘러서 크라이스트처치로 향했다.
아서스패스! 진한 감동과 감흥 그리고 긴 여운과 잔영을 남긴 채 어느덧 크라이스트처치에 도착했다. 서둘러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러면서 펜과 종이를 들고 며칠 간의 여행을 정리해 보았다. 1시간 반 정도 원고를 다 쓰고 나니 기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비행기 기내 신호음이 들렸다. 띵띵띵...
며칠 후 여행간 지인들이 사진을 서로 보내고 감사전화와 식사초대를 받았다. 사진 보기는 여행후 긴 시간의 압축 본이고 재방송이고 웃음방이다. 압축 본은 기억으로 웃고, 재방송은 양 눈으로 웃고, 웃음방은 온몸으로 웃는다. 웃으면서 죽는 게 아니라 죽어도 웃는다. 하하하.